[베이스볼 피플] 포수 지성준 칼날 송구, ‘야신’ 김성근 감독 사로잡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2월 27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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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117번 포수 지성준. 지난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육성선수로 입단한 그는 캠프에서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로 김성근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더니, 올해 정식선수로 등록되는 꿈을 이뤘다. 이젠 자신 때문에 희생한 가족을 위해 또 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한화 117번 포수 지성준. 지난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육성선수로 입단한 그는 캠프에서 강한 어깨와 정확한 송구로 김성근 감독의 눈길을 사로잡더니, 올해 정식선수로 등록되는 꿈을 이뤘다. 이젠 자신 때문에 희생한 가족을 위해 또 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한화 지성준

드래프트 선택 못받아 육성선수로 입단
어깨 좋아 연습경기 도루주자 쏙쏙 잡아
김성근 감독이 캠프서 발견한 흙 속 진주
눈도장에 KBO 정식등록까지 기쁨 두배

“송구 하나는 지금 조인성보다 나아. 방망이 소질도 있고.”

한화 김성근 감독은 스프링캠프에서 등번호 117번 포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코칭스태프보다 높은 번호, 바로 지난해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고 테스트 끝에 한화에 육성선수(옛 신고선수)로 입단한 꿈 많은 스무 살 포수 지성준 얘기다.

● 지옥에서 살아남은 세 자릿수 등번호 포수

지난해 11월 일본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 김 감독의 눈길을 받은 그는 1월 고치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여기서도 살아남아 오키나와 2차 캠프까지 따라갔다.

“솔직히 죽을 만큼 힘들어요. 그렇지만 재미있어요.” 그는 지난 가을 마무리캠프에서 힘들어서 울었다. 그러나 울면서도 희열을 느꼈다. 이제는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선택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그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 잿빛 그라운드에 몸을 내던지고 있다.

“제 고향은 충북 진천이에요. 진천은 시골이라 야구부가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야구에 빠져들어 부모님에게 야구부가 있는 청주로 보내달라고 졸랐어요. 결국 청주 우암초등학교로 혼자 전학을 가서 3학년 2학기 때 야구를 시작했죠. 진천 집에서 버스를 타고 청주로 통학하는데 1시간은 넘게 걸려요. 그 어린 나이에 새벽 6시에 일어나 홀로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고, 밤늦게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돌아오니까 부모님도 안쓰럽게 생각하셨나 봐요. 4학년 때 결국 부모님이 형까지 데리고 가족 전체가 청주로 이사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한 야구. 그러나 청주고 졸업반 때, 그는 2014 신인드래프트에서 어떤 구단의 선택도 받지 못했다. “저 때문에 가족 전체가 희생했는데…. 그래도 한화에서 신고선수로 받아줘 다행히 프로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 한화 제3의 안방마님로 급부상

지성준은 훈련과 홍백전, 그리고 연습경기에서 도루를 시도하는 주자를 가볍게 잡아낸다. 김 감독은 진흙 속의 진주를 발견한 듯 지성준 얘기만 나오면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어깨가 좋아. 송구가 베이스 바로 위로 간다니까. 빠르고 정확해.” 조인성이라면 국내 최고 강견 포수. 그보다 송구가 좋다니 어깨 하나는 일품이라는 뜻이다.

물론 아직 가다듬어야할 부분은 많다. 김 감독은 “순발력이 조금 떨어지고, 좋은 자세에서 공을 받을 때는 송구가 기막힌데 나쁜 자세에서는 정확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 점을 보완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도 그 만큼 더 욕심을 부릴 만한 재목이기에 가능한 일. 조인성과 정범모에 이은 한화 제3의 포수로 신분이 격상되는 느낌이다.

● 117번이 부끄럽냐고요? 나에겐 행운의 숫자

어쩌면 창피할 수도 있는 세 자릿수 번호. 그러나 지성준은 “나에겐 행운의 번호”라며 순박하게 웃었다.

“신고선수로 입단한 제가 번호 고를 처지도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구단에서 117번을 주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진천에서 청주로 전학 가서 처음 야구할 때 달았던 번호가 17번이었거든요. 이렇게 이번에 스프링캠프까지 왔으니 제겐 행운의 번호인 것 같아요. 저 때문에 가족 모두가 청주로 이사를 했는데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는 정말 미안했어요. 야구로 가족 호강시켜주고 싶은데…. 열심히 해야죠.”

이번 캠프 기간 도중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2015년 KBO 등록선수 마감일인 1월 31일에 맞춰 정식선수 628명 중 한 명으로 등록됐다는 소식이었다. 마무리캠프와 스프링캠프에서 흘린 눈물과 땀을 보상받았다. 117번 지성준의 꿈이 오키나와에서 영글어가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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