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외교관 “美 대북제재, 北인권 악화” vs 빅터 차 “동의 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6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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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마신 유엔 중국대표부 참사관, 린제이 로이드 조지부시연구소 국장,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왼쪽부터) 마신 유엔 중국대표부 참사관, 린제이 로이드 조지부시연구소 국장,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
“북한의 인권 악화는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도 하나의 원인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마신(馬新) 유엔 주재 중국대표부 참사관)

“그렇다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대규모 기아, 고문 같은 인권 침해가 미국의 대북 제재 때문이란 말인가. 동의할 수 없다.”(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25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뉴욕 맨해튼 코리아소사이어티에서 열린 ‘북한 인권 문제 좌담회’에서 중국 외교관과 미국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 간에 보기 드문 설전이 벌어졌다. 이날 좌담회는 빅터 차 한국석좌와 린제이 로이드 조지부시연구소 인권담당 국장을 초빙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 발표 1년의 의미와 북한 인권 문제의 향후 전망을 듣는 자리였다. 두 사람의 좌담회 요지는 “COI 보고서가 발표되고 북한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건의하는 강화된 결의안이 유엔 총회를 통과한 2014년은 북한 인권 이슈에서 중요한 획을 그은 해였다. 2015년에도 그 모멘텀(동력)을 이어가야 한다”는 다소 평의한 내용.

그러나 이어서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의 첫 질문자로 마신 중국 참사관이 나서면서 좌담회장의 열기가 뜨거워졌다. 마 참사관은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 북한 고립화 정책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를 대북 포용과 대화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의 대북정책을 그렇게 바꾸면 북한 지도자들이 (고립이나 인권 침해에 대한) 다른 핑계거리를 찾지 못하지 않겠느냐”며 “미국이 최근 쿠바와 근본적인 관계 개선을 전격적으로 선언했는데 북한한테는 왜 못하느냐”고 강조했다. 본국의 훈령을 철저히 따르는 사회주의 국가 외교관들의 특성상 마 참사관의 이례적인 좌담회 참석과 도발적 질문은 중국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행사를 취재하던 일본 기자들도 “중국 외교관이 북한 인권 토론회에 참석하고 직접 발언까지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빅터 차 한국석좌는 “당신의 주장에 정중하게(respectfully) 동의하지 않는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북한의 고립은 1950년대부터 북한 정권 스스로 선택해온 결과”라며 “대북제재는 북한의 (죄 없는) 주민이 아닌, 권력 엘리트층을 겨냥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북한 주민들이 기아로 고통 받을 때 미국 일본 등이 대규모 식량 지원한 사실을 모르느냐”고 말했다. 이어 “물론 미국의 대북정책이 완벽하지는 않다. 북한에 대해 ‘한순간에 모든 핵과 미사일을 전부 다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요구는 비현실적이란 걸 미국도 안다. 북한의 문제는 ‘변화와 진전을 향한 작은 발걸음(a small step)’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빅터 차 한국석좌는 “그래도 미국의 대 쿠바 미얀마 이란 정책보다 대북정책이 소극적인 것 같다”는 다른 방청객의 질문에 대해 “나는 버락 오바마 정부를 대변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현 정부도 대북 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대답했다. 이어 “그러나 북미 관계에 진전이 없으면 늘 미국이 비난을 받는다. 미국이 (북한보다) 더 큰 나라이고 ‘협상을 위한 협상’을 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의 대북정책은 지난 25년 간 ‘북한이 핵 개발만 포기하면 경제적 지원, 외교관계 개선 등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북한은 ‘경제발전과 핵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북미 양국 간 근본적인 괴리가 너무 크고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린제이 로이드 국장은 “북한에 외국 기업이 많이 진출하면 인권 개선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방청객의 질문에 “북한 인권 상황이 (먼저) 개선돼야 한다. 주민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서 비즈니스 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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