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울보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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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은 눈물을 참고 훌쩍이는 어린 후배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 주기 바빴다. 태극마크를 달고 뛴 마지막 무대에서 준우승에 그쳐 아쉬움은 컸지만 눈물을 흘리는 후배들의 모습이 더 가슴 아팠다.

지난달 31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에서 한국 축구의 과거와 미래가 아름다운 이별을 했다. ‘차미네이터’ 차두리(35)와 ‘손날두’ 손흥민(23)은 우승이란 ‘이별 선물’을 합작하진 못했지만 한국 축구의 희망을 되살려 냈다. 오른쪽 수비수 차두리는 탄탄한 수비와 빠른 측면 돌파로 호주 선수들을 괴롭혔고, 왼쪽 공격수 손흥민은 0-1로 뒤지던 후반 46분 감각적인 슈팅으로 천금 같은 동점골을 터뜨렸다.

연장 전반 15분 상대에 결승골을 내주며 1-2로 패한 뒤 손흥민은 30분이 넘게 눈물을 흘렸다.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중도 탈락한 뒤에도 펑펑 울었던 손흥민은 “형들에 대한 미안함,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손흥민은 “(차)두리 형에게 더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우승에)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런 부분이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가에 이슬이 맺힌 차두리는 오히려 “너희들이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느껴 정말 좋았다”며 후배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차두리는 1일 자신의 트위터에 “나의 마지막 축구 여행은 끝이 났다!! 비록 원하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정말로 열심히 뛰어 준 사랑스러운 후배들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나는 정말 행복한 축구선수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파이팅!”이라는 글을 올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우루과이에 패한 뒤 비가 내리는 그라운드에 누워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던 차두리는 지난해 브라질 월드컵 때는 알제리전이 끝난 뒤 중계석에서 눈물을 흘렸다.

차두리와 12년 차 띠동갑인 손흥민은 평소 “삼촌”과 “형”을 번갈아 부르며 차두리를 따랐다. 독일에서 오래 활약한 차두리로선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를 휘젓고 있는 손흥민이 대견하고 귀여웠다. 둘은 23일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멋진 쐐기 골을 합작했다.

2001년 11월 8일 세네갈과의 평가전에 데뷔해 A매치 75경기를 뛴 차두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마지막 남은 대표팀 현역 선수다. 지난달 10일 오만과의 아시안컵 1차전에서는 34세 178일의 나이로 출전해 이운재(은퇴)가 갖고 있던 대표팀의 아시안컵 본선 최고령 출전 기록(34세 102일)도 갈아 치웠다. A매치 40경기에서 10골을 넣은 손홍민은 이번 대회에서 팀 최다인 3골을 터뜨리며 한국의 아시안컵 100호 골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 차두리의 활약상에 누리꾼들은 ‘차두리 고마워’란 키워드를 만들어 인터넷에 띄웠고 이 키워드는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손흥민의 동점 골에 SBS 배성재 아나운서는 “손흥민이 차두리의 은퇴를 30분 늦췄다”고 말했고,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손흥민의) 연봉 올려 줘야 한다. 이런 골은 올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 / 시드니=김동욱 기자 
#차두리#아시안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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