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속 좁은 황석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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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 명(名)단편 101’이 10권으로 출간됐다. 누군가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선집류는 흔치 않다. 그렇다 보니 황석영 자신이 자신의 작품을 뽑는 다소 민망한 일도 발생했다. 광복 이전 작가로는 염상섭 이기영 현진건 채만식 김유정 이태준 박태원 강경애 이상 김사량 등 모두 10명의 작품이 선정됐다. 한국 최초의 근대소설 ‘무정’을 쓴 이광수의 작품은 없다. ‘먹고 마시고 훌쩍이는 사람의 일상이 잘 안 보인다’는 게 그가 내건 이유다.

▷이광수와 동시대에 그 점을 격렬히 비판한 작가는 김동인이다. 그런 기준이라면 이광수는 아니더라도 김동인은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도, ‘감자’도, ‘배따라기’도 없다. 이외수의 작품은 아무리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도 한국대표문학선집에 들어갈 만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외수의 작품 ‘고수’는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수는 있는데 이광수도 김동인도 없는 문학선집은 공정하지 않다.

▷이광수와 김동인이 친일을 했다 해도 문학은 문학이다. 이광수의 ‘무정’은 ‘홍길동전’ 같은 조선시대 소설과도, ‘혈의 누’ 같은 개화기 신소설과도 완전히 다른 소설의 길을 열었다. 김동인은 이광수 소설에 남아 있는 도덕적 요소까지 제거하고 이미 1930년대에 단편이 이를 수 있는 최상의 경지까지 갔다. 이광수와 김동인을 문학사에서 빼는 것은 마르틴 하이데거가 나치에 동조했다고 그의 철학을 독일 철학사에서 빼는 것과 마찬가지다.

▷황석영은 근대문학의 기점을 이광수의 ‘무정’이 아니라 3·1운동 이후 염상섭의 소설부터로 잡았다. 염상섭은 식민 상황에 대한 인식을 처음으로 작품화한 작가다. 그러나 그는 첨예한 의식에 비해 그것을 형상화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염상섭의 소설들이 술술 읽히지 않는 이유다. 사실 황석영의 소설도 그런 면이 있다. 작가가 나이 72세 정도 되면 세상을 아우르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컬렉션을 보면 여전히 속 좁은 황석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황석영#‘황석영의 한국 명(名)단편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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