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도 관객의 마음을 훔칠 기회를 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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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제작사 엄용훈 대표, 대통령에 호소
2014년 12월 31일 개봉한 ‘개훔방’
평단 지지도 높고 관객 반응 좋지만 현재 30곳 상영, 관객 24만명 그쳐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 한 달여 동안 24만여 명밖에 들지 않았다. 배급과 상영을 함께 하는 대기업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삼거리픽쳐스 제공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 한 달여 동안 24만여 명밖에 들지 않았다. 배급과 상영을 함께 하는 대기업의 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삼거리픽쳐스 제공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은 다시 관객의 마음을 훔칠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지난해 12월 31일 개봉한 ‘개훔방’이 26일까지 모은 관객은 약 24만 명. 수치만 보자면 당장 극장에서 내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그런데 영화를 제작한 삼거리픽쳐스의 엄용훈 대표는 27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 영화를 돌아봐 달라’는 글을 올리며 대기업에 장악된 영화계 현실을 비판했다.

○ “100m 경주에서 족쇄 차고 뛰는 격”

이날 서울 중구 사무실에서 만난 엄 대표는 “개봉하고 (속이 상해) 불면증에 걸렸는데 글 쓰며 또 며칠 밤을 새웠다”며 “그냥 박 대통령이 영화를 한번 봐주면 좋겠다. 이게 진짜 망할 만한 작품인지”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엄 대표가 말하려는 바는 간명하다. 개훔방이 대기업 위주의 독과점 시장구조에 짓눌려 제대로 경쟁조차 해보지 못했단 주장이다. 개훔방은 총 제작비 38억 원이 들어갔다. ‘명량’처럼 200억 원씩 들어간 대작에 비하면 소품이다. 하지만 “100m 경주에서 20m 뒤로 물러나 발에 족쇄까지 달고 뛰라고 하면 게임이 되느냐”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개훔방은 개봉 첫날 205개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외화 ‘테이큰3’(613개)와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펭귄’(509개)보다 훨씬 적다. 이에 앞서 ‘국제시장’은 913개로 출발했다. 예매율 저조 등의 이유로 개봉관이 적었던 것.

하지만 엄 대표는 “보통 큰 영화는 1∼2주 전 예매가 시작되는데 개훔방은 5일 전쯤에야 오픈했다”며 “예매가 가능한 곳도 5개 관뿐이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개봉한 ‘테이큰3’의 예매 가능 극장은 67개 관이었다. 게다가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만 틀어주는 상영관도 많았다. 26일 현재 개훔방의 상영관은 30개에 그친다.

○ 대안배급사 경계인가 단순한 착시현상인가

지난해 국내 영화 개봉작은 1117편. 평균 하루 세 편 이상 쏟아지는 상황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는 작품이 부지기수다.

개훔방은 평단 지지도 높았고, 관객 반응도 좋았다. 미국 작가 바버라 오코너의 원작이 탄탄한 데다,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등 배우들의 연기도 근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예인들의 극찬도 속속 올라왔다. 포털사이트엔 상영 확대 청원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개훔방의 시련을 “영화를 망치는 완벽한 방법”의 표본이라 부른다. 작품과 별개로 외부 요소가 작용했단 시각이다.

우선 배급사가 ‘리틀빅픽쳐스’였던 점을 꼽는 이가 많다. 리틀빅픽쳐스는 2013년 9개 제작사가 대기업 배급사에 맞서기 위해 공동 설립한 회사. 배장수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상임이사는 “‘수직 계열화’를 통해 배급사와 영화관을 함께 갖고 있는 대기업 입장에선 리틀빅픽쳐스의 배급 영화에 극장을 많이 내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 대표는 최근까지 무급으로 리틀빅픽쳐스 대표로 활동했으나, ‘카트’ ‘개훔방’의 흥행 부진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CGV와 롯데시네마 측은 이에 대해 연말연초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 좌석이 텅텅 비는 영화에 무한정 기회를 줄 순 없다는 반응이다. 또 SNS 반응이 좋다고 해서 점유율이 높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명량이나 국제시장 흥행 탓에 생기는 착시현상”이라며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들도 지난해 숱하게 망했다. 특정 영화에 불이익을 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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