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일의 혈투… IS 몰아낸 쿠르드 민병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시리아 요충지 코바니 탈환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시민으로 구성된 다국적 민병대가 이슬람수니파원리주의 ‘이슬람국가(IS)’를 치열한 교전 끝에 몰아내 국제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쿠르드족 민병대를 주축으로 한 국제동맹군이 26일 시리아 북부 전략 요충지 코바니의 도심에서 IS 병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131일 동안 15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한 치열한 교전 끝에 얻어 낸 ‘값진 승리’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발호한 IS를 장기전투 끝에 격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IS의 코바니 공세 개시

IS가 코바니 진격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17일. 탱크를 앞세운 IS의 파상공세 앞에 코바니 인근 마을들은 추풍낙엽처럼 IS 수중에 들어갔다. IS는 공격 첫날에만 코바니 인근 24개 마을을 함락시켰고 이후 이틀 사이에 39개 마을을 추가로 점령했다. IS가 코바니 시내 외곽 4km까지 밀고 들어오자 다급해진 미군은 9월 27일을 기해 코바니 일대에 공습을 시작했다.

IS의 공격으로 코바니에서 살던 쿠르드 주민 4만5000명은 터키로 피란을 떠났다. 쿠르드계 터키 청년 1800여 명은 위기에 처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돕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10월 2일 코바니 주변 마을 354곳 중 350곳을 장악한 IS가 시내 진입을 시도하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IS 측은 하루 최다인 57명이 전사했다. 쿠르드 여성 전사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10월 4일까지 코바니 주민 거의 전부가 터키로 넘어갔고 이날 마지막 외신기자도 코바니를 떠났다. 이때부터 건물 하나, 언덕 하나를 두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 시가전의 결정적 순간들

10월 10일 코바니 절반이 IS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수비대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IS의 탱크가 코바니 시내를 휘젓는 가운데 YPG 사령부까지 점령당했다. 수비대는 서쪽 외곽의 톨세어 언덕으로 후퇴했다. 이곳도 이틀 전까지 IS 수중에 있었으나 미군의 공습 덕분에 되찾았다. 톨세어 언덕까지 IS가 장악하고 있었다면 코바니 방어 자체가 붕괴됐을 수 있었다.

코바니 수비대는 한 걸음씩 후퇴하면서도 주유소와 우물 등을 파괴했다. IS 탱크들은 연료가 바닥이 났다. 치열하게 버티던 수비대에 10월 말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했다. 시리아자유군 400여 명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군사조직 페시메르가 소속 160명의 정예 병력이 수비대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수비대는 후퇴를 멈췄다.

IS도 점점 지쳐 갔다. 미군 주도의 연합군 공습에 보급로도 끊겼다. 올해 1월 2일에는 코바니 전투를 지휘하던 IS의 세이크 알 나지 사령관이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수비대는 총반격을 개시했다. 25일 IS는 마지막 예비군 140명을 투입했다. 대부분이 18세 미만 소년이었다. 전세는 바뀌지 않았다. 이날 IS 대원 41명이 전사했다.

○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전략적 요충지인 코바니는 양측 모두에 자존심이 걸린 상징적 도시였다. 국제동맹군은 이곳에서 IS의 불패 신화를 깨려 했고, IS는 파죽지세의 기세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점에서 치열했던 코바니 시가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과 히틀러의 군대가 혈투를 벌였던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연상시킨다.

터키로 건너간 코바니 주민들은 매일 고향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YPG를 응원했다. 이들은 자기 집이 미군 공습에 날아가도 박수를 쳤다. 반면 IS가 공격할 때면 불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코바니 전투 패배로 IS가 수세에 몰릴지도 관심사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