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제압합니다, 많이 아프면 말씀하세요”

  • 신동아
  • 입력 2015년 1월 25일 1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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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뇌사·강제키스 사건으로 본 정당방위 논란
● “개인 권리보호 확대” vs “악용 소지 막아야”
● 대법원의 정당방위 인정, 60년간 14건
● 위급 상황에서 ‘피해 최소화할 방어수단’ 찾아라?
● 과정보다 결과 중시하는 검찰·법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새벽 3시에 집에 온 스무 살 청년은 거실에서 불을 켠 채 서랍장을 뒤지던 50대 도둑을 발견했다. 청년은 “당신 누구야?”라고 말한 뒤 주먹으로 도둑의 얼굴을 가격해 넘어뜨렸다. 도둑이 도망가려 하자 청년은 도둑의 뒤통수를 발로 차고 빨래건조대와 허리 벨트로도 그를 공격했다.
-2014년 8월 13일 2014고단444 판결 중 ‘범죄사실’ 요약

지난해 여름 이른바 도둑뇌사 사건의 1심 판결을 맡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청이 ‘가해자’ 최모 씨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이후 정당방위 인정 범위와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낯선 침입자를 행여나 중태에 빠뜨리진 않을지 계산하며 제압해야 하나” “다른 식구에게 강도나 강간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먼저 물었어야 하나” 등 법원의 상황 판단이 부족했다는 여론이 들끓으면서 1월 14일로 예정된 항소심 판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그런데 지난해 크리스마스 새벽, 9개월 넘게 뇌사 상태에 있던 도둑 김모 씨가 사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검찰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에서 상해치사죄로 공소장을 변경했고, 이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가 바뀌면서 재판 기일도 늦춰졌다. 여전히 정당방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최씨의 형량은 1심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형법 제259조 1항).
4~5년에 한 번꼴 인정

최근 미국에선 비무장 흑인을 사살한 백인 경찰에게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판결이 반복되자 정당방위 논쟁이 인종갈등으로까지 확대됐다. 이처럼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해 문제가 되는 미국 등 서구 사회와 반대로 한국은 정당방위를 너무 엄격하게 제한해 국민과 법원 간 인식의 괴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물론 한국 형법도 정당방위를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형법 제21조 1항)고 명시했다. 그러나 김병수 부산대 법학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대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지난 60여 년 동안 14건밖에 없다. 김 교수는 “형법이 1953년 제정됐으니, 정당방위 인정은 4~5년에 한 번 나오는 희귀한 판례인 셈”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왜 정당방위 인정에 인색할까. 법심리학자인 박광배 충북대 교수는 논문 ‘일반인의 정당방위 판단에 대한 법문화의 영향’(사회와 성격, 2013년)에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첫째 법원이 ‘상황’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해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둘째 한국의 법문화가 유교의 영향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사회 질서 유지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선 어떤 경우에 정당방위로 인정받고 어떤 경우에는 그러지 못할까. 정당방위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례 1> 처남이 술에 취해 자신의 아내를 때리자 화가 나서 처남과 싸움. 그 과정에서 몸무게가 85kg이 넘는 처남이 62kg인 매형을 넘어뜨리고 가슴 위에 올라타 목을 눌러 호흡이 곤란해짐. 매형은 안간힘을 쓰며 허둥대다 근처에 놓여 있던 과도로 처남에게 상해를 가함. (대법원 2000.3.28 선고, 2000도228 판결)

<사례 2> 술에 취한 환자 보호자가 “우리 형을 살려내라”고 고함지르며 칼을 들고 병원 직원들을 위협하며 난동. 이 보호자는 ‘칼을 버리고 나오라’고 명령하는 순경에게 칼을 들고 다가옴. 순경은 11m가량 뒤로 밀리다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자 총구 부분으로 보호자의 가슴 부분을 밀어냈으나 그럼에도 계속 다가옴. 순경은 방아쇠를 당겼고, 보호자는 상해를 입어 그 후 사망함. (대법원 1991.9.10, 91다19913)

<사례 3> 건설회사 간부가 공사 하자를 보도하려는 방송기자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하자 서로 멱살을 잡고 다툼. 주위 사람들은 이를 보고 말렸음. 기자가 간부에게 대항하기 위해 깨진 병으로 찌를 것처럼 겨누어 협박함. (대법원 1991.5.28, 91도80)
‘가슴 말고 하체 쐈어야…’

위의 세 가지 사례 중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건 없다.
대법원은 <사례 1>에 대해 애초에 정당방위 가능성을 배제했다. 처남이나 매형이나 서로 공격할 의사가 있는 ‘싸움’ 중에 벌어진 일로 본 것이다. 사실 ‘무조건 맞는 게 남는 장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쌍방폭행에선 아무리 상대가 위협적인 도발을 했더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어렵다.
<사례 2>에 대해 대법원은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했다고 봤다. ‘11m나 뒤로 밀리는 동안 공포(空包)를 발사하거나 가스총과 경찰봉을 사용해 항거를 억제할 시간적 여유나 보충적 수단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득이 총을 발사할 수밖에 없었다면 가슴 부위가 아닌 하체 부위를 향해 발사’할 수 있다고도 봤다.
<사례 3>에 대해서는 맨손으로 공격하는 사람에게 깨진 병으로 대항한 것은 ‘사회통념상 그 정도를 초과한 방어행위’라고 판단했다.

정당방위로 인정되려면 방위행위가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것’이어야 하며 ‘사회윤리에 위배되지 않은 상당성이 있는 행위’여야 한다. 상대의 피해 또한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현재의’ 위급한 상황을 벗어났다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A가 칼을 들고 B를 찌르자 B가 그 칼을 빼앗아 반격해 A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서도 B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대법원 1984.1.24, 83도1873). 이미 칼을 빼앗았으므로 위급상황에서 벗어났다고 본 것이다.

도둑뇌사 사건과 더불어 최근 관심이 집중된 정당방위 관련 사건이 강제키스 사건이다. 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등법원은 강제로 키스한 여성의 혀를 깨물어 2cm가량 절단한 것은 ‘법익 침해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시했다. 키스한 여성은 체중이 80kg이고 키스당한 남성은 50kg으로 덩치 차이가 컸더라도 “여성의 어깨를 손으로 밀치거나 다른 일행에게 도움을 청하는 등의 방법도 있었다. 혹은 혀를 가볍게 물 수도 있었다”고 봤다. 역시 사회통념상 용인할 수준을 벗어났고, 상대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점이 정당방위 인정에 걸림돌이 된 것이다.

도둑뇌사 사건의 1심 판결도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선일 대법원 공보관은 “도둑이 완전히 제압돼 위급하고 곤란한 상황이 종료됐음에도 계속 폭행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 인정이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당방위 불기소 본 적 없다”

대법원이 정당방위라고 인정한 14건의 사례를 살펴보면, 2000년 이후 선고된 판례 5건은 모두 경찰이나 검찰의 불법체포에 대항해 상해를 가한 경우다. 수사기관의 불법체포에 대한 대응의 경우 적극적으로 정당방위로 인정한 셈이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라는 영화로도 제작된 일명 ‘변월수 사건’, 즉 야간에 인적 드문 곳에서 강제추행을 당하자 범인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사건도 정당방위 판례 중 하나다(대법원 1989.10.10, 89도623). 이 밖에 폭행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는 아래와 같다. 모두 정당방위로 유발한 피해 정도가 가볍다는 공통점이 있다.

△야간에 술에 취한 피해자가 피고인 차량 앞에 뛰어들어 함부로 타려 하고, 항의하는 피고인의 바지춤을 잡아당겨 찢고 피고인을 끌고 가려 함. 이에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피고인이 피해자 양 손목을 약 3분간 잡아 눌렀음. (대법원 1999.6.11, 99도943)

△피해자로부터 깨진 병에 찔리고 이유 없이 폭행당해 방 밖으로 도망쳐 나옴. 피해자는 쫓아 나와서까지 폭행. 이에 피고가 피해자 멱살을 잡아 흔들고 서로 붙잡고 밀고 당김. (대법원 1989.10.10, 89도 623)

△피해자가 차로 자신의 아버지를 치려 하자 차를 세우려 창문으로 피해자의 머리털을 잡아당겨 흉부에 약간의 상처 입힘. (대법원 1986.10.14, 86도1091)

△피해자가 외상술을 마시고 접대부와 동침을 요구. 피고인 아내가 있는 집으로 들어와 소변까지 보고 피고인을 집단구타. 이에 피해자를 업어치기 식으로 넘어뜨려 전치 12일의 상해 입힘. (대법원 1981.8.25, 80도800)

△자신을 자전거 절취범으로 오인한 군중에게 아니라고 외쳐도 무차별 구타. 소지한 손톱깎이에 달린 줄칼을 휘둘러 전치 1주일의 상해 입힘. (대볍원 1970.9.17, 70도1473)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이 정당방위 요건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하고,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검사 출신 조규홍 변호사는 논문 ‘정당방위의 상당성의 의미 및 구체적 판단기준’(법조, 2001년 6월)에 ‘검사로서 약 18년간 일하는 동안 정당방위를 인정해 불기소한 사례를 본 기억이 없다. 실무상 아예 정당방위는 잘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에 의해 정당방위 성립 여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정상 참작할 점이 있으면 기소유예하면 된다는 식의 수사를 해온 것으로 기억된다’고 썼다.

조 변호사는 ‘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형법 분야에서 다른 것은 선진국과 비교해 차이가 없는데, 유독 정당방위만은 많이 뒤떨어져 있다”며 “일본의 판례를 보면 사건 당시 상황을 매우 미세하게 분석해 정당방위 여부를 철저하게 가려내지만, 한국 판례는 사실 행위를 자세히 분석하지 않고 대충 감으로 판단한 듯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도둑뇌사 사건에서도 상황을 충분히 고려했는지가 쟁점 중 하나다. 김병수 교수는 “청년이 도둑의 흉기 소지 여부를 알 수 있었는지, 어머니나 누나 등 다른 가족의 피해 여부를 알 수 없는 급박한 사정이 있었는지 등을 따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0~30년 통용될 법리’


한국형사법학회장인 전지연 연세대 법학과 교수는 “실형은 과하다고 생각한다”며 “새벽 3시면 야간이고, 도둑을 수차례 폭행한 행위는 시간적으로 연속해서 일어난 것이므로 ‘확장적 방위’로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형법 제21조 3항에는 ‘(정당방위)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 교수는 “정당방위 요건을 따지기 어려우니 결과적으로 나타난 피해를 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점도 문제”라며 “도둑이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됐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선일 공보관은 “대법원이 우려하는 것은, 정당방위 범위가 넓어지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도둑은 죽여도 된다’는 논리가 형성될 수 있다. 대법원 판시는 한 사건에 대해서가 아니라 20~30년간 통용될 수 있는 법리를 선언하는 것”이라며 “정당방위의 범위를 넓힐 경우 생길 부작용을 고려할 때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정당방위 판단 성향은 자연스럽게 경찰의 수사지침에도 영향을 끼쳤다. 경찰은 폭력사건을 무조건 쌍방 입건하는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1년 폭력사건 수사지침으로 ‘정당방위 판단요건’을 마련했는데,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경찰은 총 8가지 요건을 모두 만족할 경우 정당방위로 본다. 이 수사지침에 따라 경찰은 지난해 4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총 447건, 475명에 대해 정당방위로 인정했다. 지난해 7월 인천에서 곽모 씨가 시비를 걸며 일행의 얼굴을 때리고 계속 따라다니며 폭행하려 하자, 박모 씨가 이를 제지하려 곽씨 목 부위를 잡아 넘어뜨린 건이 한 예다. 경찰은 사건 현장의 CCTV 확인을 거쳐 박씨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했다.



완화하려 해도 판례 없어

그런데 경찰의 정당방위 판단요건에는 ‘먼저 폭력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았을 것’ ‘상대방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중하지 않을 것’ 등이 포함돼 있다. 먼저 폭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위험한 물건 이외에는 대항 수단이 없는 상황에 대한 고려가 빠진 것이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서 상대의 피해를 미리 추측하고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따라 경찰청은 여론을 반영해 정당방위 판단요건을 완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말까지 결과를 내놓겠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완화하려면 그 근거가 되는 판례가 있어야 하는데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며 “관련 전문가 의견도 찬반이 갈려 좀더 신중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사실 지난해 4월 일부 요건이 결여됐다 하더라도 특별한 사정과 상황이 있으면 정당방위로 볼 수 있도록 정당방위 판단요건을 수정했기 때문에, 아예 요건을 완화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법률 검토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도둑뇌사 사건, 강제키스 사건, 그리고 미국 퍼거슨 사태 등으로 정당방위 논란이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다. 국민 상당수는 도둑이 사망했음에도 정당방위가 인정돼야 하며, 법원의 정당방위 인정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운데(상자기사 참조), 2, 3월께로 예상되는 도둑뇌사 사건의 항소심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 법학자는 “이번 사건은 정당방위가 무엇이고 어떤 조건에서 인정될 수 있는지 사회적으로 논의할 가장 적합한 사례였음에도 검찰과 법원은 도둑이 입은 피해만, 국민은 도둑이 집에 든 상황만 반복적으로 얘기한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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