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테뉴어 교수’ 버리고 계약직으로 간 이진규 교수…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0일 22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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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서울대 화학부 조교수로 시작해 17년간 서울대 교수로 일했다. 2003년엔 부교수를 달면서 정년을 보장받았다. 만 65세까지 안정적인 환경이 마련됐다. 2008년 교수로 승진했다. 연세대 대학원 시절부터 따지면 30년간 학교에 몸담으며 화학을 연구했다. 하지만 과감히 ‘테뉴어(정년보장) 교수’를 포기하고 계약직 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기(無機) 나노소재 분야 석학으로 꼽히는 이진규 서울대 화학부 교수(52) 얘기다.

이 교수는 스스로를 ‘발명가’라고 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출원한 특허 수만 97건.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연구하랴, 논문쓰랴, 가르치랴, 기술 이전하랴 틈이 없었다. 벤처회사에 기술 이전을 해도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현재 삼성전자 TV 패널에 탑재되는 주요 기술인 ‘퀀텀닷(전류를 흘리면 스스로 빛을 내는 양자를 주입한 반도체 결정)’의 상용화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2006년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나노스퀘어’라는 회사를 차렸다. 이 교수는 “당시 상용화는 성공했지만 시장은 퀀텀닷 기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며 “나중에 생각해보니 기업이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50이 넘은 나이에 ‘도전’을 결심했다. 이 교수는 다음달 1일부터 LG화학 수석연구위원(전무급)으로 대전 유성구 문지로 중앙연구소에 근무한다. LG화학 내에선 지난해 내부 승진한 한장선 수석연구위원(석유화학 분야)에 이어 두 번째 수석연구위원이다.

“주변에서 왜 서울대 테뉴어 교수직을 버리고 가냐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어버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10년이 지나면, 60이 넘으면, 기업에서도 절 받아들이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기회를 잡은 겁니다.”

이 교수는 “기업 임원은 매년 실적에 따라 평가받는 계약직이지만 정년 보장 약속이 없어도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모험”이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니 당연히 정년까지 일할 만큼 업적을 낼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테뉴어 교수 중 기업체로 옮긴 사례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미국에 있는 고등학생 아들 둘과 화가로 활동 중인 아내가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이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슈록 교수의 지도 아래 무기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MIT 학문간 융합연구그룹에서 박사 후 과정(포스트닥터)을 거쳤고 현재까지 106건의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가 LG화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13년. 안식년이던 그 해 이 교수는 LG화학 중앙연구소에서 1년 간 자문활동을 했다. 그러다보니 직접 개발을 하고 싶어졌다. “LG화학은 좋은 인재, 장기간 걸리는 기술 개발에 대한 인내, 제품 개발 경험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LG화학 측에서 ‘좋은 교수님들을 모셔오고 싶은데 가능할까요?’라고 물을 때 ‘제가 관심이 많습니다’라고 답했죠.”

그는 “그저 연구의 목적만이 교육에서 상품화로 달라졌을 뿐 달라진 건 없다”며 “그저 좋아하는 일을 쫓아 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무기 나노소재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2차 전치에 들어가는 음극재는 대체로 흑연으로 만들지만 무기소재인 실리콘으로 만들면 용량이 증가한다. 탄소나노튜브는 열전도율이 뛰어나고 강성은 철강보다 100배 높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지 않은 분야다. LG화학은 이 교수 영입을 계기로 무기소재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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