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장도 ‘죽을맛 未生’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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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속 실적 스트레스… ‘관리자’ 자살 5년새 12배로
화이트칼라 男 10만명당 자살자 2007년 3.7명→2012년 44.6명

‘한평생 처자식 밥그릇에 청춘 걸었다. 새끼들 사진 보며 한 푼이라도 더 벌었다. 세상 무섭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래도 참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내 품에서 뒹구는 새끼들의 장난 때문에 나는 산다. 힘들어도 간다. 여보, 얘들아. 아빠 출근한다.’

2005년 가수 싸이가 부른 노래 ‘아버지’의 가사 일부다. 싸이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 시대의 많은 아버지는 그렇게 20, 30년을 하루같이 출근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속에서 아버지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가지 끝에 가까스로 매달렸지만 실적 경쟁 스트레스에 마음은 병들어 갔다.

벼랑 끝에 내몰린 아버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통계가 나왔다. 25일 본보가 단독 입수한 윤진하 연세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의 ‘표준직업분류별 연령표준화 자살률 변화’ 자료다. 이에 따르면 ‘관리자’에 해당하는 화이트칼라 남성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007년 3.7명에서 2012년 44.6명으로 12배로 급증했다. 관리자는 기업 임원 및 부·차장급 등 재직기간이 길고 책임의 무게가 큰 직군이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속에서 책임 소관이 넓고 자신의 고용도 위협받던 관리자들이 극심한 경쟁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추세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취재팀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함 뒤에 숨겨진 엘리트 화이트칼라의 뒷모습을 추적한 결과 일류 대기업 부장도, 번듯한 공기업 팀장도 벼랑 끝에 몰려 있긴 마찬가지였다.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화이트칼라가 무너지는 것은 곧 한 가정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그동안 개인이 극복할 문제로만 인식되던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정신질환을 이제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진단하고 범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단계에 왔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실적 스트레스#기업 관리자 자살#화이트칼라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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