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총 뺏으려다… 임신 친구 지키려다… ‘두 영웅’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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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인질극 종료]
카페 매니저-女변호사 거룩한 희생… 언론 “그들이 있어 더 큰 참사 막아”
SNS에 영웅적 행동 칭송 이어져… 이슬람 주민 포용 해시태그도 확산

호주 시드니 인질극에서 린트 초콜릿 카페 매니저인 토리 존슨 씨(34)와 촉망받는 여성 변호사 카트리나 도슨 씨(38)는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다 총을 맞고 숨졌다. 호주 국민과 언론은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며 추모했다.

16일 채널9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경 17명의 인질을 붙잡고 있던 인질범 만 하론 모니스(50)의 주의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잠이 들었는지 눈까지 감았다.

고객들의 안전을 걱정하던 매니저 존슨 씨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인질범이 쥐고 있던 산탄총을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몸싸움을 하다 가슴에 총을 맞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총성을 듣고 경찰이 진압작전에 나서 대부분의 인질은 무사히 구출됐다. 존슨 씨 부모는 성명을 통해 “아름다운 우리 아들 토리가 무척 자랑스럽다. 토리는 이곳을 떠났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성 변호사 도슨 씨는 같이 인질로 붙잡혀 있던 임신한 친구를 자신의 몸으로 감싸 보호하다 총에 맞아 숨졌다. 현지 신문 오스트레일리언은 “린트 카페에서의 모닝커피 한 잔은 도슨 씨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면서 “인질극이 벌어진 그날도 임신한 동료와 그곳에 있었다”고 전했다. 도슨 씨가 누가 쏜 총에 맞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도슨 씨는 시드니대 법대를 졸업한 뒤 변호사 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으며 8세, 5세, 3세의 어린 자녀 셋을 두고 있다. 그가 속한 뉴사우스웨일스변호사협회는 성명에서 “도슨 씨는 최고의 변호사 중 한 명으로 헌신적인 엄마이기도 했다”며 “많은 동료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애도했다.

두 영웅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지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칭송과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린트 카페가 있는 마틴플레이스 광장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이 남긴 꽃다발로 꽃의 광장으로 변했다. 토니 애벗 총리 부부, 피터 코스그로브 총독 부부, 마이크 베어드 뉴사우스웨일스 주총리 등도 광장을 찾았다.

시드니 시내에는 조기가 내걸렸으며 성 메리 성당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 미사가 열렸다. 앤서니 피셔 시드니 대주교는 미사에서 “두 사람은 다른 이들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은 영웅들”이라며 “존슨 씨가 (인질범의) 총을 잡았고 비극적이게도 발사돼 숨졌다. 이 총성이 경찰의 대응을 불러 결과적으로 인질 대부분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번 인질극이 호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지만 이와 동시에 불안에 떠는 이슬람 주민을 앞장서서 배려하는 등 호주 사회가 강한 연대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높게 평가했다. 이번 사건이 이슬람 증오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SNS에서는 이슬람 주민을 포용하겠다는 의미를 담은 ‘#당신과 함께 탈게요’(#illridewithyou)라는 해시태그(hash tag·특정 키워드를 공유한다는 표시)가 수만 건씩 올라왔다. 호주는 인구 2400만 명 중 무슬림이 50만 명에 이른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호주 시드니 인질극#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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