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고발’ 후에도 정신 못차린 태권도… “협회전무 아들팀 봐줘라” 또 승부조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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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뒤 열린 고등부 품새 단체전서 심판 부의장이 ‘밀어주기’ 지시
당시 심판 “경찰 조사때 동영상 보니 조작 부인 도저히 못하겠더라”
어느 팀이 이겼을까요… 당신의 생각과 반대입니다

왼쪽팀이 ‘품새 대회’ 승리 승부 조작이 이뤄진 지난해 7월 한마음태권도대회 고등부 4강 품새 경기 모습. ‘밀어주기’를 한 서울 K고 팀(왼쪽 사진)은 팀원들의 발차기 각도가 제각각이다. 반면 진 팀(오른쪽 사진)은 발차기 각도가 높고 팀원끼리 일치돼 있다. K고 팀은 이 경기에서 심판 전원 일치 판정으로 이겼다. 경찰청 제공
왼쪽팀이 ‘품새 대회’ 승리 승부 조작이 이뤄진 지난해 7월 한마음태권도대회 고등부 4강 품새 경기 모습. ‘밀어주기’를 한 서울 K고 팀(왼쪽 사진)은 팀원들의 발차기 각도가 제각각이다. 반면 진 팀(오른쪽 사진)은 발차기 각도가 높고 팀원끼리 일치돼 있다. K고 팀은 이 경기에서 심판 전원 일치 판정으로 이겼다. 경찰청 제공
“동작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겨. 김 전무 아들이면 다야?” 지난해 7월 8일 ‘전국 추계 한마음태권도 선수권대회’가 열린 경기 의정부시의 한 대학 체육관이 고성으로 쩌렁쩌렁 울렸다.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품새 고등부 4강전에서 패한 A팀 코치. 특정인 이름을 거론한 거친 항의였지만 심판과 이긴 팀 감독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지난해 5월 아들의 편파 판정에 항의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밀중 관장(당시 47세) 사건 이후 태권도 승부조작이 또 드러났다. 이번에도 특정인 아들을 위한 밀어주기였다.

문제의 대회 4강전 동영상을 확인하면 태권도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두 팀의 기량 차이가 컸다. 당시 서울시태권도협회 김모 전무(45)의 아들이 속한 서울 K고 팀은 4명이 출전했는데 품새 ‘금강’ 중 외발로 서는 자세에서 수차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발차기 각도도 4명이 일치하지 못했다. A팀 코치가 “동작이 안 된다”고 항의한 부분이다. 반면 앞서 출전한 A팀은 3명이 한몸처럼 절도 있는 자세를 보였다. 관중석에서 “잘한다”는 탄성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결과는 5 대 0, 심판 전원 일치 K고 팀의 승리였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심판 5명은 승부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심판 이모 씨(45)는 “무조건 아니라고 뻗댈 작정이었는데 (경찰이) 동영상을 보여주니 부인할 수 없다”며 “승부조작이 맞다”고 진술했다.

승부조작은 대회를 주최한 대한장애인태권도협회의 겨루기 부문 심판 부의장인 김모 씨(62)가 주도했다. 김 씨는 K고 팀에 김 전무 아들이 속한 것을 확인하고 품새 담당 심판 부의장인 전모 씨(61)에게 “K고 팀을 잘 봐주라”고 지시했다. 전 씨는 경기 직전에 심판들을 불러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K고 팀은 대회 품새 고등부에서 우승했다. 김 군은 이 성적을 바탕으로 태권도 명문 Y대에 들어갔고 함께 출전한 K고 팀원 2명은 이 대회 우승 경력만으로 태권도 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승부조작을 지시한 심판 부의장 김 씨와 전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30일 밝혔다. 심판 5명은 단순히 지시를 이행한 것으로 보고 입건하지 않고 해당 단체에 수사 내용을 통보했다. 금전거래는 드러나지 않았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태권도#태권도 승부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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