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김무성의 설익은 개헌론과 ‘치명적 자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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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우리가 4·19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시킨 것 빼고는 위법한 대통령을 쫓아낸 적이 없다 보니 여론이 아직 긴가민가하는 것 같다. 탄핵소추가 실제 상황이 되면 탄핵 지지율도 봇물 터지듯 높아질 것이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표결을 앞두고 민주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는 이렇게 기자들에게 속삭이는 인사들이 있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나올 것”이라고 말했을 때 왜 하필 그 장면이 연상됐는지 모르겠다. 10년 전 실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을 때 여론의 시계추는 탄핵 추진론자들의 예언과는 거꾸로 탄핵 반대의 거대한 역풍을 낳았다.

김 대표는 개헌 발언 다음 날 “불찰” “실수” 운운하며 꼬리를 내렸지만, 개헌 논의 불가를 강조했던 박근혜 대통령 쪽에서 불어온 예상치 못한 역풍에 시달리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 앞에서 “대표되시는 분이 실수로 그랬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쏘아붙인 데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태호 최고위원이 어제 “대통령도 기회 있을 때마다 국회를 향해 ‘경제 활성화 법안만 제발 좀 통과시켜 달라. 지금이 골든타임이다’라고 애절하게 말씀해 왔지만 국회는 개헌이 골든타임이라 하면서 대통령한테 염장을 뿌렸다”며 최고위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만일 친박의 서청원 이정현 김을동 최고위원 등이 줄줄이 함께 사퇴한다면 최고위원회의 구성정족수 미달로 김 대표의 대표직도 끝이 나고 대권은커녕 정치생명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김 대표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충심으로 돕겠다”고 수차례 다짐했다. 하지만 박대통령에게 김 대표는 동지라기보다는 ‘언제든 자신의 정치를 위해 나를 밟고 올라서려 할 사람’일 것이라고 여권 핵심 인사들은 말한다. 김 대표는 8월 관훈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동지적 관계”라며 상하관계가 아님을 강조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선 “스승과 제자 사이”라며 깍듯한 존경을 표한 것과 대비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멤버로 정치를 시작한 김 대표는 뿌리가 다르고 결합과 결별을 거듭한 애증의 역사도 깊다.

김 대표는 개헌 봇물론을 언급하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라는 권력구조를 제시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외치(外治)를 담당하는 대통령을, 자신은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총리를 하려는 포석일지 모른다는 해석까지 제기된다. 국가운영의 틀을 바꾸는 개헌 이슈가 국회 이곳저곳서 스멀스멀 올라오는데도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제대로 된 의견 조율 자리 한 번 갖지 못한 것이 상상의 무한궤도를 낳고 있다.

개헌을 찬성하는 여야 의원들이 그리는 권력구조가 대부분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극복한다는 명분 아래 이원집정부제나 그 사촌격인 내각제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우연이라 보기 어렵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부에서도 친박이 아니라 총박(총애받는 친박) 정도만 국정의 논의 대상으로 취급된다는 생각을 갖는 의원이 많아지면 대통령의 권한을 떼어내 의회에 주는 분권형 개헌론이 득세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상적 헌법, 완벽한 헌법을 만들겠다는 주장은 오만일 수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표현을 빌리자면 ‘치명적 자만(The Fatal Conceit)’에 해당할 것이다. 대통령 5년 단임제든,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집권세력에게 지금 시급한 것은 헌법 개정을 둘러싼 입씨름이 아니라 고장 난 의사소통 시스템을 복구해 국정의 내부교란 요인을 제거하는 일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김무성#개헌론#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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