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샷 자동 퇴장’의 함정

  • 스포츠동아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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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투수 류제국(왼쪽)이 19일 NC와의 준PO 1차전에서 5회말 선두타자 모창민의 헬멧에 맞는 공을 던져 ‘헤드샷 금지’ 규정에 따라 퇴장을 당하고 있다. 창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LG 투수 류제국(왼쪽)이 19일 NC와의 준PO 1차전에서 5회말 선두타자 모창민의 헬멧에 맞는 공을 던져 ‘헤드샷 금지’ 규정에 따라 퇴장을 당하고 있다. 창원|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PS 흐름 바꿀 중대한 변수로 부상

준PO 1차전 류제국의 갑작스러운 퇴장
벤치 멘붕…불펜투수 몸도 못 풀고 등판
모호한 잣대…투수들 몸쪽 공 구사 위축
KS 7차전 9회 1점차땐 우승팀 바뀔 수도

참 묘한 것이 ‘이상한’ 제도를 만들면 꼭 결정적인 장면에서 그 모순이 터지는 것이 세상일 같다. 현대와 삼성이 격돌했던 2004년 한국시리즈(KS)가 대표적이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시간제한 규정(4시간을 넘어갈 시 연장 이닝에 돌입하지 못하는 룰, 연장 12회까지 승부가 안 가려지면 무승부로 처리되는 룰)을 뒀다. 그러나 정규시즌 때 별 탈이 없었던 이 룰이 KS에서 거듭 말썽을 일으키며 KBO는 조롱거리가 됐다. 당시 KS는 무려 3차례나 무승부를 기록하며 9차전까지 진행됐다. 곤경에 처한 KBO는 KS 9차전을 장대비가 퍼붓는 속에서 중단시키지 못하고 강행했다. 현대는 4승3무2패로 우승을 했으나 시간제한 규정은 철폐됐다. 또 포스트시즌(PS)에 한해 연장전은 15회까지로 늘어났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일까? 10년이 흐른 2014년 준플레이오프(준PO)에서 KBO가 새로 도입한 세계야구에 유례를 못 찾을 소위 ‘헤드샷 자동 퇴장’이 그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괴이한 규정이 PS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위험성을 야구팬들은 목격했다.

● PS 최대변수는 헤드샷 퇴장?

19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준PO 1차전에서 LG 선발 류제국은 5회 NC 모창민을 상대로 2구째 몸쪽 직구를 던졌다. 볼은 모창민의 헬멧을 살짝 스친 수준이었다. LG가 8-1로 앞서있었고, 5회만 넘기면 첫 PS 승리를 얻을만한 상황이라 고의성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직구를 던지다 머리를 맞히면 자동 퇴장’이라는 기계적 규정에 정상참작이란 없었다. 선발의 돌연 퇴장에 LG 벤치는 당황했고, 불펜투수는 몸조차 제대로 못 풀고 투입됐다. 7점의 리드가 없었더라면 준PO 1차전의 물줄기가 바뀔 돌발이었다.

헤드샷 규정이 살아있는 한, 벤치와 투수들이 받게 될 ‘스트레스’는 PS의 중대변수로 떠올랐다. 가령 마무리투수가 KS 7차전 9회 1점차 순간에 투입돼 헤드샷을 던져 퇴장을 당해버리면 우승팀이 바뀔 수도 있다. 한국프로야구 스트라이크 존은 세계에서 가장 좁다는 평가를 듣는다. 가뜩이나 PS에서 더 좁아지는데 헤드샷 규정 탓에 몸쪽 공 구사마저 꺼리게 되면 타고투저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 제도는 효과라도 봤나?

헤드샷 자동 퇴장 룰은 지난해 삼성 배영섭이 LG 리즈의 강속구에 머리를 강타당하고 쓰러지면서 생겨났다. 선수보호라는 ‘아름다운’ 명분에도 불구하고, 제도 도입 순간부터 현장의 비판에 직면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직구로 봐야 되는가?”, “머리가 아닌 다리를 고의적으로 맞히면 퇴장을 시킬 수 없나?”부터 “왜 심판이 고의성을 따져 판단하면 될 일을 제도로 만들었는가? 직무유기”라는 비판까지 일었다. 어느 야구인은 “이런 제도를 만든다고 선수보호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KBO의 발상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어째서 미국이나 일본야구가 도입을 안했느냐는 지적이다.

마산|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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