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정보통신혁명이 부른 소비자주권 시대… 기업도 정부도 세상 변한걸 모르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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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반대 서명운동 벌이는 김정호 연세대 교수·컨슈머워치 운영위원

《 토요일이었던 1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반대서명 운동이 한창이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미래창조과학부는 지금이라도 단통법을 철회하라”며 소비자들의 반발 움직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단통법’의 취지는 누구는 제값 주고 사고 누구는 50만∼60만 원의 보조금을 챙기는 불평등 구조를 없애 통신비를 낮추자는 거였다. 소비자를 보호하겠다고 내놓은 정책이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보조금이 줄었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제조사와 유통점들은 판매 부진에 아우성이다. 이동통신사를 제외하고는 누구 하나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보조금 상한선을 30만 원으로 정하면 대충 그 선에서 가격이 형성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신형 폰 보조금을 10만 원대로 책정했다. 평균 25만 원씩 단말기 보조금을 주었던 KT의 갤럭시S5의 경우 10만7000원으로, G3는 35만 원에서 11만4000원으로 책정한 것. 더이상 보조금 지원으로 손님 끌기가 어려워지자 암묵적 담합 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정부와 기업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정책과 상품은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정부와 기업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 소비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정책과 상품은 실패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단통법’은 법 시행 이전부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일었다. 소비자 운동 단체인 컨슈머워치와 함께 ‘소비자가 왕이다’라는 기획을 해온 본보는 2월 15일자 A28면에 ‘단말기 보조금 규제가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말은 궤변’이라는 제목으로 일찌감치 단통법 문제를 지적했었다. 컨슈머워치 운영위원이면서 단통법 반대 국민서명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은 시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지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그를 15일 오후 만났다.

통신사 배만 불리는 단통법

“미래부의 논리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동통신회사들이 단말기 보조금 지급에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보조금 지급에 상한선을 두면 통신요금을 내릴 거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업체에서 요금 인하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보조금 경쟁 때문이 아니라 유효경쟁이니 요금인가제니 하면서 요금을 묶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부가 내세운 두 번째 논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단말기 교체 주기가 너무 짧아 자원 낭비가 심하다는 거였다. 하지만 이건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다. 단말기 교체에 대한 선택은 철저하게 소비자들의 의사결정 영역이다. 주기가 짧든, 길든 바꿀 만해서 바꾸는 거지 정부가 왜 개입하느냐. 오지랖이 너무 넓다.”

―일부 시민단체들도 단통법 시행에 찬성하지 않았나.

“왜 누구는 많이 깎아 주고 누구는 적게 깎아 주냐는 논리였다. 나만 ‘호갱’(호구+고객을 뜻하는 비속어)이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논리인데, 결국 전 국민 모두가 ‘호갱’이 되지 않았나. 법 시행 전에는 단말기를 비싸게 사는 사람도 있었지만 눈치껏 싸게 살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높은 값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국정감사에서 미래부는 “정책효과를 기다려보라”고 하던데….

“이미 정책효과는 ‘실패’로 드러났다. 이대로라면 더 지켜봐도 달라질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정부는 시간이 지나면 통신요금이 떨어질 것이라고 하지만 두고 보라, 절대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정책은 한시바삐 폐지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미래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법 시행 결과가 정부 기대와 반대로 흘러가자 제조사 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을 불러놓고 ‘제조사 출고가가 높다’ ‘통신사가 소비자 판매점과 부담을 나누라’고 했지만 이건 정부가 기업을 공개적으로 협박한 것이다. 또 제조사가 휴대전화 원가를 공개하고 통신사가 보조금을 얼마나 줬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보조금 분리 공시’를 도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휴대전화 제조원가가 밝혀지면 문제가 더 커진다. 외국에서 팔리는 삼성, LG 단말기 가격까지 흔들기 때문이다. ‘분리공시’가 실시되면 소비자들은 더 비싸게 휴대전화를 사야 된다.”

그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고 했다.

“통신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정부 때문이다. 우리 이통시장에서 SK텔레콤 요금은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정부 허락 없이 함부로 요금을 올리거나 내릴 수 없다. 대개 시장점유율 50%를 넘지 않는 선이다. 그러면 KT와 LG유플러스가 좀 더 낮은 요금을 매긴다. 정부는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5 대 3 대 2의 점유율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SK텔레콤이 5를 넘어버려 7 이상의 독점적인 공급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게 일명 ‘유효정책’이다. 하지만 과연 SK텔레콤이 독점하는 게 문제일까. 통신시장을 개방하고 경쟁을 시키면 SK텔레콤도 당장 요금을 내릴 거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나머지 두 회사가 죽을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런데 죽으면 어떤가. 가격만 낮아지면 되는 거 아닌가. 또 죽었다고 치자. 두 개 남으면 다른 사업자를 진입시켜 주면 된다. 정부가 5 대 3 대 2를 고집하는 한 통신요금 인하는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윽박지르면 내리는 척은 하겠지만 지속되지 않는다. ‘기업이 알아서 해라’라고 하는 순간, 치열한 경쟁이 이뤄질 것이다. 소비자가 신나는 일이다. 이통시장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으려면 보조금을 규제할 일이 아니라 규제를 풀고 요금인가제를 폐지해 시장 경쟁에 맡겨야 한다.”

내친김에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 사찰’ 문제로 대화를 옮겼다. 김 교수는 이번 카카오톡 사찰 문제 역시 해당 기업이나 정부가 얼마나 소비자 마인드가 없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라고 했다.

소비자 안중에 없는 다음카카오-정부

“우선 사건의 발단은 정부가 제공했다. 일종의 ‘뒷담화’에 대한 것인데, 공개석상에서 하는 것이면 법으로 다뤄야 할 문제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끼리끼리 수군대는 것을 영장을 청구한다느니 조사한다느니 하니 문제가 생긴 거다. 요즘 말로 정말 ‘오버’한 거다. 이어서 나온 다음카카오의 대응은 그야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수사기관의 전화 한 통에 소비자 동의도 안 받고 자료를 넘겨주는 식으로 전혀 소비자 정보를 보호해주지 않다가, 나중에 ‘사이버 망명’이니 하니까 순간 태도가 돌변한 것 아니냐.”

그는 정보통신혁명으로 소비자들은 국경 없이 오고가는데 정작 정부와 기업만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했다.

“정부가 한국 내에 서버를 둔 메신저만 감청한다면 그건 그 기업 망하라는 소리다. 스마트 시대의 소비자들은 클릭 한 번으로 바로 이탈이 가능하다. 카톡이 마음에 안 들면, 일본에 서버를 둔 ‘라인’으로 갈아타거나, 독일 ‘텔레그램’으로 가버리면 그뿐이다. 소비자 주권이 확실하게 실현되는 세상이다. 앞으로는 광고로도 소비자를 속일 수가 없게 된다. 경험해본 사람들이 직접 경험담을 쓰고, 그 경험담이 공유된다. 그야말로 진정한 소비자 주권이 최고 우선인 시대가 왔다. 생산 유통 판매 모든 분야에서 소비자 마인드로 무장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아무리 새로운 진입자를 규제나 법으로 막고 싶어도 되지 않을 거다.”

경쟁촉진만이 답

―3월 ‘컨슈머워치’로 소비자단체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시작했나.

“기존의 소비자단체는 품질관리 단체였다. 어떤 상품이 좋고 안 좋고를 공개하거나 용량, 유통기한 표시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려온 면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것은 수입을 막는다든지 업체들 간에 가격 경쟁을 못하게 한다든지 하는 법이나 규제가 소비자 이익을 해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본질이다. 일부에서는 소비자에게 ‘착한 소비’를 하자면서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정하고 대형마트가 문 여는 날짜까지 조정하자고 하는데 이것은 진정한 소비자 운동이 아니다. 진짜 소비자 운동은 ‘좋은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도록 경쟁을 허하라’이다.”

그는 “‘상생 경제’라는 말로 ‘생산자 담합’을 포장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소비자단체는 ‘소비자 중심’의 생각을 해야 한다. 이념이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휘둘리면 안 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보호하자면서 대기업이나 덩치가 큰 상대를 공격하는데 그건 품질이 형편없어도 사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이다. 중소상인들이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불철주야로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 개발하고, 물건을 싸게 팔기 위해 고민해야 살아남는다. 무조건 작다는 것을 내세워 권리를 행사하는 것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에게 ‘생산자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도 있지 않는가’라고 묻자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주변 등록된 차량을 택시처럼 바로 탈 수 있는 ‘우버 택시’의 예를 들었다.

“우버 택시를 도입하면 기존 택시사업자들이 다 망한다고 한다. 지금 택시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크다. 지저분하고 위험하고 승차 거부 문제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나? 소비자가 택시를 골라서 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버 시스템은 소비자들이 차량을 타고 난 뒤 그 차량과 운전사에 대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좋은 차량을 고를 수 있다. 기존 택시 회사들도 소비자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모든 택시 운전사들이 이 시스템을 싫어한다고? 천만에. 평가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서비스가 훨씬 낫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국회의원은 우버 택시 타는 소비자까지 처벌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 정말 소비자 주권 시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소리다.”

그는 “결국 규제를 철폐해 경쟁을 촉진하는 것 말고는 소비자 이익을 증대시킬 방안은 없다”면서 이렇게 말을 맺었다.

“자동차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 영국이었다. 스팀엔진을 개발한 곳이 영국 아닌가. 차가 처음 나올 무렵 제일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마부들이었다. 영국 정부는 마부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차가 말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런데 독일은 그런 규제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자동차산업은 벤츠 BMW를 만들어낸 독일에서 꽃을 피웠다. 영국은 차를 제일 먼저 개발해 놓고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규제 때문이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단통법#김정호#국정감사#사이버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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