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늘려야 해… 청년채용 줄입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년60세 의무화 앞두고 ‘고용 부메랑’
기업들 “2016년 인건비 증가에 대비”…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 연장할 경우
中企 89% “신규채용 축소 부작용”… 대기업 40% “기존 직원 구조조정”

최근 서울의 한 금융회사는 올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인원을 지난해보다 40명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 회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파가 한창이던 2009년에도 채용 인원을 늘렸다. 하지만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도록 한 ‘고령자 고용촉진법’ 시행을 앞두고 인건비 급증에 대비해 신입사원을 덜 뽑기로 한 것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년 연장에 대한 기대 때문에 향후 수년간 ‘자연퇴직률’이 뚝 떨어질 예정이어서 마련한 고육지책”이라며 “퇴직자 1명 인건비면 대졸 신입 2, 3명을 채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60세 이상 정년 의무화를 1년 3개월 앞두고 고용시장의 변화가 물밑에서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수익성 악화를 겪는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이거나 2016, 2017년에 ‘턱걸이’로 정년이 연장될 가능성이 있는 50대 중반 사원들을 ‘조용히’ 명예퇴직시키기도 한다.

반면 일부 대기업의 강성 노동조합은 정년을 65세까지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년층 근로자의 재직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청년층의 채용 기회가 줄어들 수 있어 ‘세대 간 일자리 전쟁’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국회에서 통과된 고령자 고용촉진법에 따라 2016년부터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 등은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 나머지 중소·중견기업들과 공무원은 2017년부터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년을 앞둔 장년층 근로자의 임금을 차츰 줄여 나가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업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방침이다. 인건비 급증으로 기업들이 겪을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동아일보 취재팀이 주요 대기업 10곳과 중소기업 30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임금피크제를 이미 도입한 기업은 대기업 중 50.0%, 중소기업은 7.7%에 불과했다. 노조가 임금피크제를 반대하는 경우가 많고 회사로서도 필요할 때 명예퇴직을 시키는 것이 임금피크제 도입보다 비용이 덜 들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9일 임금협상을 타결한 현대자동차는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을 60세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현대차 노조는 협상 과정에서 국민연금 수급 시점인 65세까지 정년을 연장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임금피크제 없이 정년을 연장할 경우 대기업의 70.0%, 중소기업의 88.5%는 “신규 채용을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답했다. 대기업 40.0%와 중소기업 30.8%는 “기존 직원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라고 응답했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고령화와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년 연장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하지만 기업 부담을 줄이고, 청년 채용 감소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시급히 직무성과급 형태로 개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 / 임우선 기자
#임금피크제#정년#선임연구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