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얼병원’ 中최대주주 파산… 정부, 확인도 않고 헛발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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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1호 투자병원’ 사업포기 파장… 모기업 설립자는 경제비리 구속
줄기세포 주력… 사업성도 불투명, 제주 사무소-홈페이지 폐쇄
정부 ‘아니면 말고식’ 무리한 추진… 영리병원 허용 놓고 갈등 부추겨

국내 1호 외국인 투자개방형병원 후보로 주목받던 산얼병원의 한국 사업 철회는 어느 정도 예견된 수순이었다. 산얼병원의 모회사인 CSC 헬스케어재단(China Stem Cell Health Group)은 이름 그대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에 주력하는 병원이다.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이 병원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20개 진료 과목이 있지만 줄기세포를 이용한 노화방지클리닉이 가장 주력 과다.

○ 산얼병원 한국 철수 이미 예견

하지만 국내 의료법은 자신의 몸에서 채취한 줄기세포를 곧바로 주입하는 것만 허용하고 있다.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치료나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까다로운 임상시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줄기세포를 제외하고는 한국보다 의료 수준이 떨어지기 때문에 성공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국내 반대 여론도 산얼병원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산얼병원은 줄기세포를 진료 과목에서 빼고 미용피부과 성형 진료에 집중하겠다고 했지만 중국으로 환자를 유인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병원 설립의 최종 허가권을 갖고 있는 제주도와 승인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 이후 산얼병원이 줄기세포 시술 계획을 철회하고 제주 현지 병원과 응급의료 관련 협약을 맺은 만큼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해 왔다.

산얼병원이 저가 마케팅을 통해 국내에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을 싹쓸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았다. 서울 강남구에서 대형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A 씨는 “최근 중국에서 한국 성형에 대한 불안감을 의도적으로 이슈화하고 있는 가운데 산얼병원이 초저가 할인 등을 통해 국내 성형외과의 질서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산얼병원의 재정 부실도 악재로 작용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산얼병원의 모회사인 CSC 헬스케어재단의 설립자이자 회장 자이자화(翟家華)는 지난해 7월 경제사범으로 구속됐다. 산얼병원의 최대 주주사인 시단무 산얼 바이오 유한공사와 광성예 광업투자 유한공사는 설립자의 구속과 은행 대출금 상환 문제로 지난해 8월 문을 닫은 상태다. 산얼병원의 제주 사무소와 인터넷 홈페이지도 현재 폐쇄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있던 이 병원 계정도 지난해 3월을 끝으로 아무런 관련 소식이 올라오지 않고 있다.

○ 섣부른 발표로 영리화 논란만 가중

이렇게 산얼병원의 부실 징후가 여러 곳에서 발견됐지만, 정부는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통해 ‘아니면 말고 식’의 9월 중 승인 추진을 전격 발표하는 ‘우’를 범했다. 섣부른 산얼병원 승인 추진 발표가 의료 영리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번 산얼병원 철수 파문으로 당분간 외국인 의료기관 허가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범정부 차원의 유망 서비스업 육성책이 발표되는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당시 ‘산얼병원 승인’에 자신 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12일 무역투자진흥회의가 끝난 뒤 복지부 담당자는 본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산얼병원이 응급의료 체계 구비 등 설립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9월에 승인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산얼병원의 부실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발표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산얼병원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에 대한 문책론이 거세게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신청 의료기관에 대해 △병원의 실체가 있는지(건전한 기관인지) △의료에 대한 경험이 확실히 있는지 △의료관광 및 의료수출에 도움이 되는지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이진한 기자·의사

민병선 기자
#영리화#산얼병원#투자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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