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4형제의 마지막 여행… 性소수 10대의 출구 없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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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황금마차’ ‘야간비행’
소외된 약자에 눈 맞춘 다양성 영화 2편… 대작 홍수속 선택의 폭 넓히며 다가와

저소득 계층 형제가 등장하는 ‘하늘의 황금마차’(위쪽)와 청소년 성적소수자를 다룬 영화 ‘야간비행’. 두 영화 모두 기존 상업영화와 다른 화법과 속도감을 지녔다.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질감이 특출한 작품이다. 아담스페이스·영화사진진 제공
저소득 계층 형제가 등장하는 ‘하늘의 황금마차’(위쪽)와 청소년 성적소수자를 다룬 영화 ‘야간비행’. 두 영화 모두 기존 상업영화와 다른 화법과 속도감을 지녔다. 자신만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질감이 특출한 작품이다. 아담스페이스·영화사진진 제공
소외는 쓸쓸한 단어다. 원치 않게 주변으로 밀려버린 삶이란 타자가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하기도 조심스럽다. 특히나 요즘처럼 피로감이 극에 달한 우리 사회라면.

하지만 이럴수록 관심을 놓지 말자 손 내미는 다양성 영화 2편이 나왔다. 오늘 개봉하는 ‘야간비행’과 다음 달 4일 선보이는 ‘하늘의 황금마차’다. 소재도 스타일도 다르지만 대작영화 틈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 아쉬웠던 관객이라면 둘 다 놓치기 아쉽다.

○ 하늘의 황금마차

치매에 걸린 홀몸노인 큰형님(문석범). 가진 거라곤 폐가 수준인 집 한 채인데, 비루한 세 동생은 이걸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큰형은 참다못해 집을 걸고 형제에게 여행을 제안한다. 막내 뽕똘(이경준)은 자신이 키우던 허접한 밴드 황금마차도 동참시키며 생뚱맞은 길 떠나기가 펼쳐진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영화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영화는 지난해 미국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지슬’의 오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2009년 ‘어이그 저 귓것’으로 데뷔한 오 감독은 고향인 제주도 배경 작품만 찍었는데, 이번에도 섬 내음이 물씬 난다. 하지만 유쾌한 스카 밴드인 킹스턴 루디스카가 참여한 이 음악영화는 분위기가 전작과 다르다. 올해 제1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선 한국 작품 최초로 개막작에 선정됐다.

어찌 보면 하늘의 황금마차는 이율배반적이다. 코딱지만 한 희망도 없어 보이는 저소득 계층 노년(혹은 장년) 형제. 영화는 그들 앞에 다가온 죽음이란 묵직한 주제를 다뤘는데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신난다. 형제는 물론이고 밴드마저 다툼이 끊이지 않건만 그마저 ‘축제’로 다가온다. 허진호 감독이 남긴 “한국의 에미르 쿠스투리차(‘집시의 시간’ 등으로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휩쓴 거장)를 발견한 기쁨”이란 평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이 작품의 흥겨움은 단편적인 폭소와는 질이 다르다. 씁쓸한 현실을 알기에 소주 한 잔 털어 넣으며 머금는 피식거림이랄까.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 왁자지껄한 여정 속에 뭔가를 깨닫고 마음을 채웠지만, 그렇다고 고단한 살림살이가 나아진 건 아니다. 허나 그런들 어떠한가. 함께 부대낄 이가 옆에 있다면 그 인생을 누가 덧없다고 말할 수 있으랴. 하늘의 황금마차는 그렇게 어깨춤을 추며 스리슬쩍 비벼온다.

○ 야간비행

하늘의 황금마차가 까만 반지하방 창문을 뚫고 쏟아진 한 줄기 빛이라면, 이송희일 감독의 이 영화는 쪽방을 위태로이 밝히던 촛불을 뒤흔드는 한 줄기 바람 같다. 불편해도 고개를 돌릴 수 없는.

2006년 ‘후회하지 않아’ 이래 독립영화계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쌓아 온 감독은 한국사회의 치부인 학교폭력에 눈을 돌렸다. 비행청소년과 성적 갈등, 왕따에서 교권 상실까지 모든 게 차려진 밥상은 어디 하나 젓가락을 내밀기도 두려울 만큼 구석구석 곪았다. 그리고 그 속엔 편견과 경멸마저 감수해야 하는 10대 성소수자들이 웅크리고 있다.

고교생 용주(곽시양)는 홀어머니가 키웠지만 밝고 건강한 우등생. 하지만 중학교 절친이던 기웅(이재준)에게 남들에겐 말할 수 없는 감정을 품은 채 산다. 가세가 기울며 엇나간 기웅은 학교 일진으로 다른 삶을 살고, 용주가 다가가려 할수록 거친 반응만 보인다.

영화는 올해 4월 개봉했던 ‘한공주’를 떠올리게 한다. 위태로운 청소년의 현실에 카메라를 들이댔기 때문일까. 솔직히 그만한 파괴력은 없어 보이나, 슬금슬금 목덜미를 죄어오는 무게감은 뒤처지지 않는다. 용주의 가녀린 사랑 자체도 애절하지만, 이를 더 벼랑으로 모는 건 잔인한 주위 반응이다. 또 다른 벗 기택(최준하)은 용주의 성적 취향을 ‘배신’으로 욕하고 학교주임은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가장 섬뜩한 건 속내를 알게 된 담임교사의 대사다. “서울대만 가. 그럼 모든 게 해결돼.”

야간비행은 추석 때 가족이 함께 볼 영화는 아니다. 등급도 청소년 관람불가다. 하지만 한 번쯤 곱씹어 보자. 한공주도 그렇고, 이 땅의 10대 문제를 다룬 작품을 왜 당사자 세대는 볼 수 없을까. 그 소외의 간극 역시 볼 ‘자격’을 지닌 어른들이 대답할 몫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하늘의 황금마차#야간비행#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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