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남의 오늘과 내일]응원단 대신 김정은을 초청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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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 이후 9년 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다시 인천에 올 것 같다. 인천 거리에는 벌써 북한의 9월 아시아경기대회 참가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시민단체들은 남북공동응원단을 만들어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 공교롭게도 올해 남북관계는 2005년과 비슷하게 냉랭하다. 그래서 남북이 9년 전처럼 스포츠 행사를 계기 삼아 화해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남과 북에 도움이 된다면 ‘역사의 반복’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안상수 인천시장은 2005년 5월 30일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방북길에 올랐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낸 고려항공 여객기를 타고 휴전선을 넘어 곧바로 평양 순안공항으로 날아갔다. 평양 체류는 물 흐르듯 순탄했다. 북한은 인천의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유치 지원에 흔쾌히 동의하고 2005년 9월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 선수단과 응원단을 보내겠다는 보너스까지 챙겨줬다.

안 전 시장은 “북한의 초청은 냉랭한 남북관계를 바꾸겠다는 신호탄이었다”고 회상했다. 북한은 노무현 정부가 햇볕정책을 계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출범 3년 차인 2005년 초반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미국의 압박과 남한발(發) 악재가 겹쳤다. 2003년 6월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대북송금 사건으로 구속됐고, 2004년 7월에는 우리 정부가 베트남으로 탈출한 탈북자 230여 명을 한꺼번에 비행기로 입국시켜 북한을 자극했다.

노무현 정부는 안 전 시장을 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메신저로 활용했다. 안 전 시장은 평양 방문 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부터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는 이유와 우리에게 원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타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북한 선수단 파견이 확정된 이후 남북관계는 술술 풀렸다. 2005년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다. 북한은 북핵 6자회담에도 복귀했다.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은 예정대로 인천 아시아육상경기대회에 참가해 환대를 받았다.

남북관계를 현 상태로 이어갈 수는 없다. 남북 사이에 대화가 없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무리 통일 대박과 통일 준비를 외쳐도 공허할 뿐이다. 남북 실무접촉에서 쩨쩨하게 선수단과 응원단 규모를 따지는 대신 아예 김정은을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에 초청하면 어떨까 싶다. 김정은 스스로 아시아경기대회 참가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불신을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강조하지 않았는가.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판에 과거처럼 북한 응원단의 미모에 아무 생각 없이 빠질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북한 지도자 초청이 어렵다면 측근 인사를 선수단 인솔자로 보내도록 교섭해 당국 간 접촉을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문제가 해결되면 9년 전처럼 다른 채널의 남북대화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 전 시장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이어서 북한과 접촉하는 과정에 노무현 정부의 견제를 받기도 했다. 이해찬 당시 총리는 안 전 시장의 방북 성과에 대해 “대화나 간담회 수준으로 봐야 한다”며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새누리당 소속인 현 유정복 인천시장은 정부와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다.

남북 간 직행 통로가 막혀 꼼짝 못할 때면 우회로를 활용하는 지혜라도 있어야 한다. 9월 아시아경기대회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인천 아시아경기대회#북한 응원단#김정은#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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