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세월호, 삼호주얼리, 타이타닉의 선장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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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죽어가는 시간에 물에 젖은 지폐 말리는 선장은 우리사회의 구조적 취약점
화물 자동차 대충대충 묶고 제주항 도착 전부터 하역 준비하는 선박들
배와 함께 수장된 타이타닉 선장 - 해적과 싸운 석해균의 용기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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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참사는 돈만 알고 안전은 뒷전인 부실 선박회사와 무책임한 선장이 함께 만들어낸 인재(人災)다. 이준석 씨(69)는 원래 선장이 휴가 가는 바람에 세월호를 맡은 대리 선장이다. 국제화물선 선장을 25년 한 국립목포해양대 임긍수 교수는 “제대로 된 선장을 써야 하는데 청해진해운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책임감이나 실무적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을 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선장은 1년 계약직에 월급여가 270만 원 정도였다.

세월호의 경우 대리 선장 밑에서 지휘체계나 위기 대응 매뉴얼이 도무지 작동하지 않았다. 진도관제센터가 “선장이 최종 판단을 해 승객 탈출시킬지 결정하라”고 재촉하는데도 세월호에서 돌아온 답은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침몰 해역에서 진도 동거차도까지의 거리는 1.5km. 어선이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승객들이 구명동의를 입고 갑판에 나왔다가 바다로 뛰어내렸더라면 대부분 구조됐을 것이다.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선실에 그대로 놔두고 배를 먼저 탈출한 것은 타이타닉호 이래 내려온 ‘바다의 법칙(the rule of the sea)’을 저버린 행위였다. 타이타닉의 이등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선장의 지시에 따라 여성과 어린이들만 구명보트에 태웠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바다의 법칙이냐”는 질문에 이등항해사는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구명정에 올라탄 남자들에게 “비겁자들”이라고 욕하며 총을 들이대고 위협해 내리게 했다.

선교는 갑판 한가운데 있는 선장의 지휘소다.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선교가 물에 잠겨 유리창이 수압(水壓)으로 깨질 때도 조타키를 붙잡고 그대로 서 있었다. 한 승객은 “스미스 선장의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보았다”고 마지막 모습을 기자에게 전했다. 스미스 선장은 해빙기(解氷期)의 유빙(流氷)경고를 묵살하고 고속 항해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타이타닉과 함께 가라앉아 영웅으로 남았다.

스미스 선장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는 기념동상이 서 있다. 동판에는 그가 위기 상황에서 선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Be British(영국인답게 행동해)”였다고 새겨져 있다. 이 말이 한국 언론에도 많이 인용되고 있지만 영국 언론과 드라마 작가들이 스미스 선장의 영웅적인 죽음을 미화한 작문(作文)이라는 시각이 유력하다. 그렇더라도 선장과 선원들의 마지막 모습이 자랑스러웠기 때문에 이런 작문이 나왔을 것이다. 생존 선원 제임스 맥건은 스미스 선장의 마지막 말을 똑똑히 증언했다. “당신들은 의무를 잘 수행했어. 지금부터 각자 생존을 위해 싸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승객 구조에 최선을 다한 선원들을 차디찬 바다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라고 놓아준 것이다.

세월호의 사고 원인과 관련해서도 연안여객선의 운항 실태를 잘 아는 전문가는 화물과 자동차를 제대로 묶지 않아 이 같은 대형 참극이 빚어졌다고 추정했다. 세월호 화물칸에는 차량 180대와 화물 1157t이 실려 있었다. 배가 크게 변침(항로변경)을 하는 순간 제대로 묶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추정이다. 배가 기울어질 때 쿵 소리가 난 것은 화물 충돌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막으려면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화물을 단단히 고정시켜야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모두 비용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대충대충 한다는 것이 선박업계에선 다 아는 비밀이라고 한다. 하역시간을 줄이기 위해 배가 제주항에 도착하기 한두 시간 전부터 짐을 푼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월호는 안개 때문에 두 시간 늦게 출발해 짐 푸는 작업을 서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를 통해 규명해야 할 대목이다.

우리에게도 비겁자 선장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목숨을 걸고 해적을 속이는 기만전술로 시간을 끌어 최영함과 해군 특수전여단의 작전을 도운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도 있다. 그는 해적의 총을 맞으면서도 선원과 선체를 지켜냈다. 이준석 선장은 한국 선장의 명예를 침몰시켰다. 학생들이 선실에 갇혀 죽어가는 시간에 물에 젖은 5만 원짜리 지폐를 말리는 자질의 인간에게 수백 명의 인명을 맡겼다는 것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일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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