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선장과 위험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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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는 규칙을 잘 지키는 아이다. 학교 선생님의 말이라면 요령이 없다 싶을 정도로 곧이곧대로 따른다. 큰아이가 만약 세월호를 탔다면 “객실에 남아 자기 자리를 지켜 달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누구보다 충실히 따랐을 것이다. 아빠와 같이 있었고 아빠가 갑판으로 나가자고 권했다면 아빠에게 화를 내며 “안내방송을 따르지 않으면 어떡할 거냐”고 자기는 아빠 따라 가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안산 단원고의 많은 학생이 그렇게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따르다가 죽거나 실종됐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한다. 걸어가는 사람은 위험을 거의 완전히 스스로 통제한다. 남이 모는 마차나 자동차를 타고 간다면 위험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하지만 사고가 나더라도 반드시 사망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는 다르다. 추락하면 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비행기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는지, 조종사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는 온전한지 확인하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항공사를 믿고 탈 뿐이다. 위험의 관리가 개인의 통제를 벗어나는 요소가 많아지는 사회를 위험사회라고 한다.

▷배는 비행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위험사회적 요소가 가장 많은 이동수단이었다. 지금은 구명조끼나 구명정이 잘 갖춰져 있지만 전(前)근대사회에서 배가 침몰하면 거의 살아날 가망이 없었다. 오늘날도 먼바다에서 사고가 나면 승객들은 구명 장비가 있어도 살아남기 어렵다. 승객은 선장을 전적으로 믿고 배를 탄다. 선장이 캡틴(captain)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위험사회가 된다. 위험사회는 ‘위험한 사회’라기보다는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사회’다. 위험사회를 유지하는 데는 신뢰가 필요하다. 항공사가 조종사나 정비사를 제대로 관리할 것이라고 믿을 때, 선사가 선장을 제대로 관리할 것이라고 믿을 때 비행기를 탈 수 있고 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갈 수 있다. 세월호 선장에게 분노하는 것은 우리가 선장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저버렸기 때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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