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열]20여 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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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열 서울대 교수 사회학
이재열 서울대 교수 사회학
‘세월호’의 침몰이 가져온 충격으로 온 나라가 얼어붙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절규는 보는 이의 가슴도 미어지게 한다. 수많은 생명을 삼킨 채 가라앉은 거대한 선체를 눈앞에 두고도 어쩌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모두 망연자실했다. 진도 앞을 휘돌아 흐르는 맹골수도의 거센 조류와 싸우기에는 최첨단의 구조장비와 최고의 잠수사들조차 무기력하다.

하루에 네 번 조류가 바뀔 때만 접근을 허락하는 어려운 조건이지만,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려야 한다. 사고 원인을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책임을 묻는 것도 일단 미루자. 그러나 엄청난 재난 앞에서 치미는 이 분노와 불안감은 어떻게 할 것인가.

분노하는 이유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보인 비상식적 행동 때문이다. 배가 기울기 시작해 침몰하기 직전까지 무려 140분. 대부분의 시간을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으로 허비한 후, 정작 결정적 순간에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을 보며, 왜군이 도착하기 전에 도성과 백성들을 버리고 서둘러 몽진 길을 떠난 선조나, 서울 사수를 외쳐놓고 먼저 피란하면서 한강 인도교를 폭파해 시민들의 발을 묶어 버린 이승만 정부 각료들을 떠올린다.

지도층(노블레스)은 있으나, 이들의 도덕적 모범(오블리주)은 기대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해서 화가 나고, 구명복을 양보하다 희생된 어린 학생이나 젊은 여직원과 대비되는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태가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것이다.

불안한 이유는 20여 년 전 아픈 상처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당시의 유례없는 대형 재난들은 압축적 근대성의 기념비에 정신적 외상(trauma)도 깊게 새겨놓았다. 1993년 3월 경부선 구포역에서의 탈선사고로 78명이 사망한 이래, 7월에는 아시아나항공기의 화원반도 추락으로 66명이, 10월에는 위도 서해 훼리호 사고로 292명이 사망했다. 1994년 10월에는 성수대교 붕괴로 32명이, 1995년 4월에는 대구지하철 공사장의 가스 폭발로 101명이, 6월에는 삼풍백화점의 붕괴로 502명이 사망한 바 있다.

일본에서 퇴역한 배에 선실을 증축하고 대대적 구조변경까지 한 세월호의 이력 위에, 본래 설계도에 없는 한 층을 증축하고 그 위에 거대한 냉각탑까지 설치했다가 무너져 내린 삼풍백화점의 모습이 겹쳐진다. 짙은 안개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감행한 세월호의 선택에서 태풍예보에도 불구하고 출항을 결정했던 서해 훼리호나, 폭우와 강풍 속에도 회항하지 않고 계속 착륙을 시도했던 아시아나항공기의 무모함을 떠올리게 된다.

도대체 몇 명이 타고 있는지 알지 못해 계속 승선자 수가 바뀌는 세월호 사례는 서해 훼리호 사건이라 착각할 만큼 똑같지 않은가. 해경과 안전행정부, 경기도교육청이 서로 소통되지 않아 생존자 수가 널뛰기하는 현실은 철길 밑 전력공동구 공사를 둘러싸고 철도청과 한전 간의 소통 실패로 일어났던 구포역 탈선사고와 닮은꼴이다. 대형 재난 앞에 허둥대고 뒷북치는 중앙정부의 아마추어리즘도 20년 전과 다를 바 없다.

생존 학생과 인터뷰하면서 사망한 친구의 이름을 대고 소감을 묻는 언론의 잔인함에, 구조팀과 뒤섞여 내시경 카메라까지 들이대며 매몰 현장을 생중계했던 삼풍 사고가 떠오른다. 재난 관련 보도지침은 어디에 있는가.

문제는 내일이다.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와 스미싱의 물결 속에 불안과 분노는 희생양을 찾는 마녀사냥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재난을 통해 드러난 우리의 민얼굴, 그 비뚤어진 모습을 직시하는 일이다. 그래야 달라진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기적을 바라며 생환을 위해 기도한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 사회학
#세월호#보도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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