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당신은 영웅”… 자녀 손잡은 주부도, 출근길 회사원도 조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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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 박지영씨 빈소]

‘대한민국 국민’이 보낸 조화 20일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승무원 박지영 씨의 빈소에서 한 여고생이 국화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박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대한민국 국민’이 보낸 조화 20일 인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승무원 박지영 씨의 빈소에서 한 여고생이 국화를 올리며 애도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들의 탈출을 돕다가 숨진 박 씨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인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나 같은 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이런 의인(義人)을 먼저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바닷물이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절박한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과 어린 학생들을 대피시키다 목숨을 잃은 박지영 씨(22·세월호 승무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20일 인천 중구 인항로 인하대병원 장례식장. 박 씨의 빈소 앞 복도에는 전국에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보낸 ‘익명의 조화(弔花)’가 가득했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대한민국 국민’ ‘의로운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등 전국에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이날 한 30대 주부가 초등학생 자녀들의 손을 잡고 박 씨의 빈소를 찾았다. 그는 자녀에게 “숨진 누나를 위해 기도하자”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 한 고등학생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5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봉투에 담아 부의금을 내면서 엉엉 소리 내 울어 빈소를 찾은 많은 사람을 숙연하게 했다.

전날 오후 11시에는 한 40대 남자가 빈소를 찾아와 “집에서 TV를 시청하다 너무 답답해서 빈소를 찾았다. 나는 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하는 시한부 인생이다. 나 같은 사람이 먼저 죽어야 하는데…”라며 비통해했다. 회사원 이희정 씨(29·여)는 “선장과 선원 등이 자기만 살겠다고 배를 버리고 도망갈 때 고인은 죽음에 맞서 책임과 임무를 다한 성인(聖人)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침몰한 세월호를 타고 인천 용유초등학교 동창들과 제주도로 환갑 기념 여행을 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심창화 김정근 씨(60)도 박 씨의 빈소를 찾았다. 인하대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인 이들은 “박 씨가 의자를 구해와 빨리 4층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줘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의 희생 덕분에 이렇게 살아있다”며 고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박 씨의 거주지인 경기 시흥시는 고인을 의사자(義死者)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흥시 관계자는 20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박 씨 유족에게 의사자 신청 서류를 전달했다. 관련 서류가 준비되면 정부에 의사자 신청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상에서도 박 씨를 의사자로 추천하는 청원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에서는 18일부터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 씨를 의사자로 국립묘지에 모십시다’라는 청원이 진행되고 있다. 10만 명 목표 인원에 20일 오후까지 2만 명 가까운 이들이 동참했다.

박 씨의 모교인 수원과학대는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박 씨는 2011년 수원과학대 산업경영학과에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다니다가 가정형편 때문에 휴학한 뒤 청해진해운 승무원으로 일해 왔다.

반면에 청해진해운은 박 씨 유족에게 장례비로 700만 원만 지원하겠다고 밝혀 공분을 사고 있다. 유족들은 “청해진해운 측이 먼저 장례비 700만 원을 줄 테니 부족한 부분은 가족이 알아서 보태라고 했다. 사고를 낸 회사가 죽은 이를 두 번 죽이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박지영씨 빈소#세월호 침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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