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한살 위 오빠가 구명조끼 벗어줬어요… 엄마는? 아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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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병원 달려온 고모 “형편 어려워도 행복한 가족 감귤농사 꿈 부풀었는데…”

“엄마는? 아빠는? 오빠는?”

권지연 양(5)은 16일 오후 전남 목포한국병원에서 곁을 지켜주는 여경에게 연신 가족을 찾으며 울먹였다. 권 양은 15일 아버지 권재근 씨(52)와 어머니 한윤지 씨(베트남 출신·한국 국적), 오빠 권혁규 군(6)과 함께 여객선 ‘세월호’를 탔다가 승객들에게 홀로 구조됐다. 권 양의 부모와 오빠는 실종 상태다.

사고 직전 권 양과 권 군은 부모와 잠시 떨어져 배에서 놀던 중이었다. 배가 점점 기울자 권 군은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벗어 동생에게 입혀주곤 부모를 찾아오겠다며 자리를 떴다. 권 양은 오빠가 입혀준 구명조끼 덕에 배에 물이 차올라도 떠 있을 수 있었다. 마침 탈출하던 학생들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병원 측이 권 양에게서 아버지 휴대전화 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고 뒤늦게 연락이 닿은 고모가 병원으로 달려와 권 양의 신원을 확인했다.

권 양은 연신 불안해하며 잠을 못 이루다 밤늦게 찾아온 고모의 얼굴을 보고서야 겨우 잠들었다고 한다. 권 양의 고모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부모는 애들을 찾으러 다니고 혁규(권 양 오빠)는 부모를 찾으려다 서로 엇갈려 못 빠져나온 거 같다. 형편이 어려워도 행복한 가족이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권 양 가족은 감귤 농사를 하러 제주로 귀농하던 길이었다. 원래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지으며 살던 권 양 가족은 5년여 전 서울로 왔다. 권 양 부모는 청소 일을 하며 어렵게 살림을 꾸렸지만 네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월세방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권 양 부모는 서울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제주에서 청소업체 사업을 시작하고 감귤농사를 다시 짓기 위해 한 달 전쯤 귀농을 결심했다. 권 양은 부모에게 ‘제주도에 집까지 마련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큰 집에서 살게 됐다”며 주변에 자랑까지 했다고 한다. 서울에서의 이삿짐은 1.5t 트럭에 다 실릴 만큼 간소했다.

권 양 아버지는 청소업체 동료들이 “19일 송별회라도 하고 내려가라”고 권했지만 “하루라도 빨리 제주도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권 양의 사촌언니는 사고 소식을 듣고 권 양 남매가 똑같은 옷을 입고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꼭 도와달라”고 호소해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목포=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진도#여객선 침몰#세월호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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