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판사들, 너무 둔감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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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8일 미국 디트로이트 시 법원의 판사는 8세 딸을 수시로 때린 끝에 칼로 찔러 숨지게 한 27세 어머니에게 최소 23년 최고 50년의 징역형을 판결했다. 법정에서 어머니는 “아이를 죽인 것은 우연한 실수였다”고 변명했으나 판사는 중형을 선고했다.

2013년 8월 영국 버밍엄 시 형사법원의 판사는 4세 된 아들을 학대하고 굶어죽게 만든 폴란드인 어머니와 의붓아버지에게 각각 최소 30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실상의 종신형이다. 이들은 손잡이를 없애고 열쇠 구멍도 막아 밖을 볼 수도 없는 작은 방에 수시로 아들 대니얼을 가두고 때리거나 정신을 잃을 때까지 찬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그도록 했다. 밥 대신 소금을 삼키도록 했으며 입에다 물을 들이부어 토하게 하는 등 갖은 학대를 했다. 콕스 판사는 “문짝에 남겨진 작은 손과 손가락 자국은 대니얼이 탈출하기 위해 한 필사의 노력을 보여주는 고통의 흔적”이라며 “오줌에 찌든 매트리스와 바닥의 젖은 양탄자는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최악의 감금 상태에서 그 어린아이가 죽어갔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콕스 판사는 “피고들은 어린아이를 보호하고 사랑하고 돌봐야 할 의무가 있는 부모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인 신뢰를 저버렸다”고 무겁게 처벌한 이유를 밝혔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어린이 학대 살인사건을 다룬 미국과 영국 법원의 형량은 울산과 경북 칠곡의 의붓어머니들에 대한 형량과 크게 차이가 난다. 두 배 이상이다. 국민의 반응도 차이가 크다. 영국 국민과 정부는 어린이 학대 문제에 소홀했음을 후회하고 반성을 쏟아냈을 뿐이었다. 한국과 달리 판결에 대한 어떤 분노나 비판은 없었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심각한 사안에 대한 엄중한 형량이라고 평가했다. 국민감정과 형량이 일치한 것이다.

나라마다 법체계나 법문화 등이 다르다. 형량의 기준도 다르다. 더욱이 사건마다 내용이나 성격이 다르다. 그러니 다른 나라 법원의 형량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린이 학대 사건은 좀 더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된 마당에 우리나라 법원과 외국 법원의 형량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형량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어떻게 가라앉힐 것인가.

담당 판사는 “가정 폭력에 관대한 기존 정서, 허술한 아동보호 체계 등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피고인을 극형에 처하는 것만으로는 이런 비극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 같다. 판사가 벌을 주는 목적에는 국민 보호와 범죄 억제뿐만 아니라 범죄자 처벌과 희생자에 대한 보상도 있지 않은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는 것은 사회의 전반적 시스템이다. 그 문제는 정부나 전문가 등 사회 전체가 자책하고 반성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사건의 의붓어머니는 사회 전반적 문제의 희생자가 아니다. 죽은 딸이야말로 허술한 사회 시스템의 희생자이며 계모의 개인적 악행의 희생자이다. 판사는 사건 자체에 충실했어야 했다. 개인적으로 나쁜 짓을 한 의붓어머니가 어떤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을 무엇보다 앞서 고민했어야 옳다. 이제라도 국민의 감정이 왜 그토록 자신의 판단과 다른지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재판의 형량은 늘 논란거리다. 형량의 결정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판사는 사건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다. 누구도 그보다 잘할 수 없다. 판사들은 법에 맞는 형량을 선고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은 형량이 범죄의 심각성에 못 미친다고 비판한다. 국민은 속속들이 사건이나 결정 과정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법관들을 나무란다. 법관들의 관대함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판사들의 판단과 국민감정의 골은 깊다. 울산과 칠곡의 의붓어머니에게 내려진 형량에 대한 여론의 분노는 그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잘 알게 해주었다. ‘황제노역’ 판결도 마찬가지다. 형량에 대한 불만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2013년 영국 법무부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 국민의 73%가 형량이 관대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나 미국, 호주 등의 연구 결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왜 판사들이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국민이 이해를 못한다면 국민의 무지나 몰이해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18세기 영국의 법관이며 정치인이었던 윌리엄 블랙스톤은 “법은 국민의 도덕 감정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형량이 국민이 생각하는 도덕이나 상식과 어긋난다면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사법정의의 정당성은 판사들만의 생각과 판단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관들이 사법의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기 일쑤인 국민이 법관의 생각과 판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도 사법정의를 이루기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국민이 사법부의 형량을 공정하고 적절하다고 믿지 않으면 사법정의가 실현될 수 없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판사#형량#가정 폭력#사법부#아동 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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