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섭 전문기자의 바둑人]<10> 선생님이 된 이슬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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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바둑고등학교 바둑교사가 된 얼짱 프로기사 이슬아 3단은 “가르치는 게 바로 공부”라고 말한다.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한국바둑고등학교 바둑교사가 된 얼짱 프로기사 이슬아 3단은 “가르치는 게 바로 공부”라고 말한다.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2010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바둑 2관왕으로 체조의 손연재 등과 힘께 '한국의 5대 얼짱'으로 꼽혔고, 이후 TV의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출연한 프로기사 이슬아 3단(23). 얼마 전 그가 전남 순천에 있는 한국바둑고등학교 교사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의외였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14일 전남 순천군 주암면 주암댐 근처에 있는 한국바둑고등학교를 찾았다. 오전 10시 반경 이슬아 프로의 3교시 바둑수업을 참관할 수 있었다.

"기보를 어떻게 외우라고 했어. 120수나 되는 것을 어떻게 그냥 외워! 흐름을 파악해야지!"

"자기 진영은 넓히고 적진은 깨고…"

"여기에 붙인 이유는 뭐야?"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카랑카랑한 그의 목소리가 교실 전체를 울렸다. 그는 교실을 오가며 연신 큰소리를 냈다. 방송에서 본 모습보다 지금은 학생들을 다그치는 교사의 모습이 더 어울려 보였다.

그는 학생들을 수준별 3개 그룹으로 나눠 수업을 했다. 중간 그룹에는 의미를 파악하며 실전 기보 120수를 외우게 했고, 상위그룹에는 맥심커피배 준결승전(박정환-최철한) 기보를 놓고 가르쳤다. 타이젬 6단에서 9단 실력의 상위그룹에는 패착은 뭔지, 승착은 뭔지를 종이에 적게 한 뒤 일일이 바둑판에 돌을 놓아가며 그 자리를 찾도록 했다. 교탁에는 학생들이 낸 '기보기록장'이라는 공책도 보였다. 부산에서 왔다는 조성직 군(16)은 "선생님의 수업이 행마의 틀을 잡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 수업 참관을 마친 뒤 김종구 교장선생님의 양해를 얻어 교장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먼저 바둑교사를 선택한 이유는 뭔지, 계기가 있었는지를 물었다.

한국바둑고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슬아 프로.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한국바둑고등학교 1학년 수업시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이슬아 프로. 순천=윤양섭 전문기자 lailai@donga.com
"프로기사는 성적을 내는 토너먼트 프로와 보급 프로로 나눌 수 있다. 지난해에는 성적을 내보려 오로지 바둑공부만 했다. 박지은 9단이 주축인 홍대연구실에 나가 공부했다. 여의치는 않았지만…. 그러다 지난해 7월 이곳과 연이 닿았다. 바둑 강의를 하게 된 것이다. 바둑을 정식 과목으로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가 올해 프로교사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해 합격한 것이다."

선배 기사들인 김효정 2단(현 프로기사회장), 이다혜 4단 등과 함께 군부대에 바둑보급을 하고 다문화가정 아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바둑교사 1개월째인 이슬아는 1주일에 16시간씩 '바둑기술' 과목을 가르친다. 실전 바둑이다. 그는 "가르치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2년차 교사인 백지희 2단(29)은 바둑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개인 생활을 즐길 짬이 거의 없다. 학생 기숙사에서는 아침 6시에 기상 방송을 울리고 저녁에는 점호도 한다. 그는 기숙사에서 수업 준비와 사활문제 답안 등을 채점한다. 또 학생들이 기숙사내 바둑 휴게실에서 질문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한 달간 외출한 건 세 번뿐. 주말에 페어대회에 참가하러, 그리고 김수진 이다혜 등 친한 프로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 2번 발걸음을 한 것과 여수의 집에 다녀온 게 전부다. 홍기표 6단과 짝을 이룬 페어대회에서 이겨 본선에 진출했다. 다시 서울행을 할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슬아 프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10세) 때 바둑을 배웠다. 이후 김세실 프로 2단의 아버지로 여수 지역에서 유명한 바둑사범인 김봉석 씨에게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는 6학년 때 한국기원 연구생이 될 수 있었고 3년 만인 중학교 3학년 때 프로로 입단했다. 내신 성적 1위로 입단한 그는 "여자 입단대회에서는 매번 예선에서 탈락했다"며 "내신제도가 없었으면 프로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매스컴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 대회로 화제를 옮겼다. 그는 아시아경기대회 바둑 대표로 선발된 것은 "편안한 마음으로 뒀기 때문"이라며 말을 꺼냈다.

"그 무렵 나는 성적이 10번 싸워 1, 2승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열심히 잘하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워낙 성적이 부진하자 집에서 어머니가 '명지대를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다. 대표가 되지 못하면 대학 가면 된다는 편안한 마음이 오히려 대표가 되게 만들었다. 워낙 중요한 대회라 긴장하는 기사들이 많았는데 나는 운이 좋았다."

그는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한국의 5대 얼짱으로 꼽혔는데 어땠느냐'는 질문에 "솔직히 주목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성적이 따라 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페어와 여자단체전서 금메달을 딴 2관왕이다.

이후 그를 눈여겨본 방송에서 '댄싱 위드 더 스타'에 출연시켰다. 이에 대해 바둑계에서는 '프로 기사로서 품위에 손상이 간다'는 비판론과 '바둑 홍보에 좋다'는 긍정론이 엇갈렸다. 일부에서는 본인에게 직접 대놓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제는 그 상처들도 어느 정도 정리된 듯 보였다. 그래서 "다시 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온다면 하겠느냐"고 물었다.

"지금 같으면 못 나갈 것 같은데요(웃음). 하지만 광저우 아시아경기가 4년이 돼 간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방송 출연은 봐서(웃음)."

그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그는 "개인생활이 없어 힘들기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이 농담도 하고 잘 따르는 편"이라며 교사 생활에 재미를 붙인 듯했다. 그는 "교사로서 일한다기보다는 아이들과 같이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앞으로 1년간은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과 내가 함께 발전하도록 노력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르치는 게 바로 공부예요. 그토록 싫어하던 사활공부를 여기서 하니까요"라며 웃었다.

끝으로 그에게 "남자친구는 있느냐"고 묻자 "있으면, 여기 있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종구 한국바둑학교 교장

김종구 한국바둑고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가 바둑계에 인재들을 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구 한국바둑고등학교 교장은 “우리 학교가 바둑계에 인재들을 배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슬아 3단을 만나러 간 김에 한국바둑고등학교 김종구 교장도 인터뷰했다. 그는 광주 출신으로 여수에서 교육장을 지내다 올해 초 부임했다. 김 교장은 앞으로 "바둑고등학교 출신들이 한국 바둑계에서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바둑고등학교가 전국 유일의 바둑특성화고교라고 들었다. 특성화고는 뭔지….

"바둑특성화고는 실업계인데 바둑을 실업교육으로 하고 있는 학교라고 보면 된다. 주암종합고등학교가 2013년 한국바둑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꾸고 2013년 처음 신입생을 받았다. 첫해에 20명씩 2반 40명을 뽑았다. 올해도 똑같이 선발했다. 현재 3학년은 종고 시절에 들어온 학생들로 인문계 7명, 실업계 7명이다. 내년부터는 전 학년이 바둑과 학생들로 채워진다. 충암고나 세명고는 체육특기생을 바둑특기자로 받는 학교다. 우리와는 달리 그 학교들은 특별히 바둑교육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보통 과목과 바둑 과목을 절반 정도씩 배운다."

―두 해에 걸쳐 뽑은 바둑과 학생들은 바둑을 잘 두는 지 궁금하다.

"첫해보다는 올해 들어온 학생들이 더 잘 둔다. 상위 그룹은 타이젬에서 고단자인 아마추어 고수들이다. 고수 14명이 학교에서 자체 리그전을 펼치고 있다. 물론 바둑이 약한 학생도 많다. 멀리는 부산이나 서울에서 온 학생들도 있다. 바둑과 학생 80명 중에서 현재 60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졸업하면 학생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일반 대학에 갈 수도 있고 바둑학과가 있는 명지대나 대불대에 갈 수도 있다. 그리고 바둑관계 업무에 종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바둑을 잘 둬 프로 기사가 되는 학생도 나오길 바란다. 앞으로는 바둑을 가르치려 해도 자격증이 필요한 시대가 오리라고 보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적임자다. 학교에서 이론은 물론이고 실전까지 익혔으니 가능한 일이다."

―프로 교사가 현재 백지희 2단과 이슬아 3단 2명인데….

"프로 기사인 교사가 가르치니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해 바둑 교재 3권을 만든 데 이어 올해도 3권을 만들 예정이다. 지난해 바둑교사로 온 백지희 프로는 성실하고 꼼꼼하게 첫해 바둑교육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슬아 프로는 적극적이어서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현재 이들의 연봉은 3500만 원인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전남교육청에 월급을 올려달라고 건의하고, 남자 프로 교사도 1명 더 채용할 계획이다."

순천=윤양섭 전문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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