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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언니’ 스타 강사 김미경의 재기 일성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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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언니’ 스타 강사 김미경의 재기 일성 “잘못했다, 무지했다, 미안하다”

동아닷컴입력 2014-03-07 16:19수정 2014-03-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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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니 다시 채워지더라”

‘스타 강사’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이 돌아왔다. 석사논문 표절 논란으로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지 1년 만이다.

지난해 초 ‘김미경 열풍’이 불었다. tvN ‘김미경 쇼’는 케이블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올렸고 ‘드림온’ ‘언니의 독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등 그의 저서들은 한꺼번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김 원장은 미래가 불안한 취업준비생, 일과 육아에 지친 워킹맘 등에게 “꿈을 품고 정진한다면 못 할 일이 없다”며 따끔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에 많은 사람이 그를 ‘꿈 멘토’ ‘국민 언니’로 추앙했다. 그가 출연한 MBC ‘무릎팍도사’는 이례적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내려앉기 전에 내려놓기

하지만 3월 20일, 조선일보가 1면에 그의 석사논문 표절 의혹을 다루면서 ‘김미경 열풍’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조선일보는 2007년 2월 김 원장이 이화여대에 제출한 석사 학위논문이 기존 연구·학위논문을 최소 4편 짜깁기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그는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며 자취를 감췄다.

설 명절을 앞둔 1월 마지막 주, 서울 마포구 하중동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논문 사건’ 이후 첫 인터뷰를 앞두고, 다소 상기된 모습이었다. 김 원장은 2월 중순 발간될 새로운 책을 내밀었다. 책 제목은 ‘살아 있는 뜨거움’. 포근하면서도 강렬한 다홍빛 커버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기계발서는 여러 권 썼지만 에세이는 처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새로운 책을 언제 구상했냐고 물으니 “내가 작년에 시간이 좀 많았니?”라며 화통하게 웃었다. 걸걸한 목소리와 화끈한 말투는 그대로였다.

김 원장은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촌년’이라 표현한다. 1964년 충북 증평에서 태어난 그는, 손대는 사업 족족 실패한 아버지 대신 평생 양장점을 운영하며 가계를 꾸려온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을 꼭 빼닮았다. 연세대 작곡과에 수석 입학하며 상경의 꿈을 이뤘지만 음악 대신 학생운동에 빠져 대학 시절을 보냈다. 결혼 후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스물아홉, ‘꿈이 시키는 대로’ 기업 강사가 됐다. 20년 가까이 기업을 돌며 여성 리더십, 여성 마케팅 등에 대해 강의했고 2006년 MBC 희망특강 ‘파랑새’로 TV 강의를 시작했다. 2011년부터는 ‘김미경의 파랑새’라는 ‘토크 콘서트’ 형식의 강의를 시작해 매달 청중 500여 명을 만났다. 그는 “결혼했으니 일을 그만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을 정도로 30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고 고백했다.

▼ 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는데 지난 1년 공백이 낯설진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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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쉬자 기업 강의 요청도 줄어들었어. 프리랜서한테 스케줄은 목숨과도 같은데, 많은 회사가‘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강사로 초청하기 어렵다’며 강의를 취소한 거야. 회사 규모를 그대로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직원이 여럿 나갔어. 그런데 잘된 일이지. 비운 만큼 채우는 건데, 이왕이면 화끈하게 많이 비우는 게 좋지. 대통령 중에도 감옥에서 내공을 쌓은 사람이 있잖아. ‘내려앉기 전에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많이 비웠어.”

▼ 내려앉는 것과 내려놓는 것이 다른가요?

“많이 달라. 무너지는 걸 아등바등 안고 있으면 쿵 내려앉는 거고, 내가 포기하면 내려놓는 거지. 내려놓았을 때는 내가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알 수 있지만, 타의에 의해 내려앉기 시작하면 끝이 어딘지 몰라. 내려놓고 그다음에 채우기 시작하는 거지.”

‘증평 촌년’의 꿈, 어학연수

▼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왔죠?

“내가 태생적인 촌년이잖아. 대학 때 가장 부러운 게 아버지 돈으로 미국 유학 가는 애들이었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영어로 강의를 해서 베트남, 중국 등 동남아에 내 강의 콘텐츠를 퍼뜨리는 거거든. 근데 그간 하루에 강의를 7, 8건씩 했는데 영어 공부할 시간이 어딨어. 그저 결심과 포기를 반복했지. 그런데 일이 줄어드니 직원들이 ‘원장님, 지금이 일도 적고 영어 공부하기에는 적기예요’라며 나를 미국으로 보내줬어요. 직원들한테 참 고맙지.”

▼ 30년 만에 영어 공부, 잘되던가요?

“정말 오랜만에 영어를 접했지. 진짜로 영어가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오른쪽 귀로 쏙 빠져나가더라고. 미국 뉴욕대 여름 어학코스에 갔는데, 한국 학생이 몇몇 있었어. 스무 살 갓 넘은 뽀송뽀송한 애들이야. 한참 토익, 토플 공부하다 온 애들이랑 내가 비교가 되겠어? 근데 내가 잘하는 거 있잖아, 억척스러운 거. 거기서도 3, 4시간만 자면서 공부했어. 글쓰기나 PT(발표)는 본문 전체를 외워버렸고, 단어는 큰 종이에 그림을 그려서 벽에 붙여놓고 외웠어. 오렌지를 쥐어짜는 그림을 그리고 ‘squeeze’, 자동차 문을 당기는 그림을 그리고 ‘pull’, 이런 식으로. 처음 입학할 때는 레벨 시험에서 9단계 중 밑에서 3단계로 들어갔는데, 졸업할 때는 글쓰기 시험에서 96점 받았어. 비법? 그냥 다 외워버렸지.”

tvN ‘김미경쇼’는 2013년 초 케이블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 그럼 이제 영어 강의할 수준이 되나요?

“물론 아니지. 그런데 지금 저명한 물리학자인 미나스 카파토스 미국 채프먼대 교수와 함께 책을 쓰고 있어. ‘살아가는 문제와 고통을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한 책인데, 일단 카파토스 박사랑 소통하고 책을 써야 하니까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지금 책 목차는 다 나왔어요. 이 일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건, 공부도 일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는 거야. ‘10년 후 미국에서 강의할 것’이라는 꿈을 막연하게만 꾸다보면 10년은 어느덧 와 있고 영어는 여전히 못해요. 당장의 ‘출구’, 공부를 써먹을 데가 있어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거지.”

“노력만 한다고 될까?”

2월 10일 그의 새로운 책 ‘살아 있는 뜨거움’이 발간됐다. 이 책은 우리 각자의 삶에는 ‘운명의 추’가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벽시계에 매달린 추가 왼쪽과 오른쪽을 오가듯, 우리 삶도 불행과 행복 사이를 수없이 오간다는 것. 늘 걸걸한 목소리로 “핑계 대지 말고 일단 죽을 만큼 열심히 살라”고 소리 높여 외치던 ‘드림 워커’가, 왜 이제와 ‘운명의 힘’을 논하는 걸까.

“살다보면 운명적인 일이 벌어져요. 꿈과 의지를 갖고 달리다가도 가족, 환경 때문에 꿈을 향해 더는 갈 수 없는 때가 생겨.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벌어지는 일 때문에 꿈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무조건 나 혼자 열심히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 지난 1년간 그 질문에 답을 해주지 못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난 그 대답을 운명에서 찾았어요.”

▼ 운명과 꿈, 어떻게 다른가요?

“꿈이 행운이라면 운명은 불행이야. 행운은 힘든 인생을 견디게 하지만 불행은 나를 단련시켜. 운명 때문에 꿈을 꿀 수 없다지만, 운명과 친구가 돼서 그 안에서 꿈을 키워야지. 운명을 다스리고 친구가 되는 법을 배워야지.”

▼ 운명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나요?

“운명의 추는 살아 있는 내내 끊임없이 움직여. 우리의 심장이 뛰는 한, 추가 움직이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지. 이때 중요한 건 내 상황만 좌우로 움직이지 정작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야. 부자인 나와 가난한 나, 행복한 나와 불행한 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지만 내가 굳건하게 있다면 그때 비로소 ‘본래의 나’를 만나게 되지.”

“지금도 팬들에게 미안”

지난해 김 원장은 ‘운명의 추’에 한 방 세게 맞았다. 3월 20일, 조선일보는 1면에 “교수·목사·스타 강사까지 표절로 출세하는 나라”라는 제목으로 김 원장의 석사논문 표절 의혹을 다뤘다. 그가 2007년 2월 작성한 석사 학위논문 ‘남녀평등 의식에 기반을 둔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의 효과성 분석’에 대해 조선일보는 “기존 연구·학위논문을 최소 4편 짜깁기했다. 단어도 바꾸지 않은 채 통째로 각 논문에서 문장과 문단을 가져다 자기 학위논문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또한 조선일보는 모 대학 교수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 원장이 대필업체를 통해 논문을 쓴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원장은 이후 SNS를 통해 “졸업한 뒤 20여 년이 지나 처음 논문을 쓰느라 기술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었다. 학계의 기준에 맞추지 못한 것은 실수였지만 양심까지 팔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후속 연구자가 정리한 개념을 인용하면서 원 저작자를 밝히지 않은 것은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는 것이다.

▼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럴 만하니까 그랬던 것 같아. 나 지난해 1, 2월에 엄청 바빴어요. tvN에서 ‘김미경쇼’를 재방송을 하도 많이 하니까 TV만 틀면 내가 나왔을 정도야. 시청률도 잘 나왔고, 이후 TV 토크쇼 출연도 잦았어. 게다가 서점에 가면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10위 중 3, 4권이 내 책일 정도였어. 갑자기 인기가 부풀어 오르면서 ‘왜곡지수’도 같이 상승했지. 게다가 내가 20년간 강의를 했는데, 그 많은 말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말빚’을 졌겠어. 지난해 초 인문학 비하 논란(‘김미경쇼’에서 ‘나는 인문학 서적만 읽고 자기계발서를 안 읽는다’는 여학생에게 김 원장이 ‘자기계발서는 인문학의 요약판’이라며 ‘건방지다’고 말한 것이 화제가 되면서, 김 원장이 인문학을 비하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역시 마찬가지야. 내가 한 잘못들,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디 안 가고 구름처럼 몰려 있다가 내가 제일 부풀려졌을 때, 딱 소나기처럼 쏟아진 거예요. 난 그게 운명이라고 생각해. 반면 견딜 수 있으니까 그때 온 거 아닐까?”

▼ 책과 강연을 통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거듭 주장했던 분이 석사논문을 표절했다는 데 실망한 사람이 많았어요..

“정말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반응이었어. 나에 대한 기대가 이만큼 컸는지 몰랐어요. 정말 너무 미안하더라고. 더 주의해야 했는데. 지금도 그 친구들한테 정말 미안해.”


▼ 이후 이화여대 연구진실성위원회에서는 ‘부분적으로 표절로 볼 수 있지만 논문 자체의 독창성이 인정되고 당시 표절에 대한 기준이 없어 추가조치는 없을 것’라고 판단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독창성을 인정해줬다는 점에 대해 이화여대에 고마워요. 그럼에도 사실 잘못은 잘못이고 표절은 표절이지. 제가 무지했어요. 잘못한 건 확실해요.”

▼ 문제의 논문, 다시 본 적 있나요?

“사건이 터지고 며칠 후, 잠이 안 오기에 한번 검색해봤어. 그리고 논문에서 문제가 된 부분들을 혼자 고쳐봤지. 후속 연구자가 정리한 개념을 재인용하는 대신 원 저작자의 논문을 찾아 내가 다시 정리하면 되는 거잖아. 사실 재밌었어. 1주일 꼬박 매달렸더니, 논문이 딱 깔끔해졌거든. ‘아, 처음부터 이렇게 할걸’하는 생각도 들었고 공부도 됐어요. 그러면서 이 논문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고 다 곰삭아 이젠 내 일부가 됐어요.”

전업주부를 무시한다?

▼ ‘독설’강사인 만큼 팬도 안티도 많아요.

“사실 인기가 있으면 루머를 피할 수 없어. 칭찬하는 사람이 있으면 욕하는 사람이 있는 게 당연하지. ‘인욕정진’이라고 하죠. 욕을 통해 수행을 한다고. 욕을 먹어야 수행이 되지 칭찬만 들으면 수행이 되나.”

▼ 김 원장에 대한 악플 중 “강의 아이템과 책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된다” “자기 복제한다”는 비판이 있어요.

“솔직히 어떤 기업 강사는 아이템 3개로 30년간 강의해. 나는 2006년부터 TV 강의 때문에 계속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어. 정말 10년간 매일 3, 4시간씩 자면서 고3처럼 살았어. 제 강의를 진심으로 들은 사람이라면 그런 말 못할 거예요.”

▼ 책 ‘언니의 독설’은 여성들에게 ‘일을 통해 자아를 찾으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 때문에 상당수 전업주부가 “육아는 정말 성스러운 일인데, 김미경은 일하는 여자만 우월하다고 한다”고 불편해해요.

“전업주부로 사는 것,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에요. 내가 가진 시간을 하나에 몰입하는 거랑 둘로 나누는 것 중에, 뭐가 더 힘들까? 당연히 몰입하는 게 더 힘들어. 워킹맘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 가정에서 풀고,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일터에서 푸는데 가정주부는 풀 데가 없잖아. 게다가 가정주부 재밌고 훌륭하게 하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김치 맛있게 담가서 남편 먹이는 걸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 있어요. 나는 그런 삶도 참 값지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런 거 잘 못하거든.”

▼ 많은 사람에게 본인과 같은 억척스러운 삶을 강요하는 것 아닌가요?

“서로 다른 인생을 저울에 올려놓고 평가할 수 없지. 나한테 맞는 나만의 인생을 찾아야죠. 나는 강요한 적 없어요. 다만 나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는 거예요. 요즘 20~30대 여성 중 상당수가 나처럼 평생 일하며 살고 싶지 않나? 그런 사람들한테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우리 가족이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알려줘서 그들은 덜 다쳤으면 좋겠어요. 나는 내 방식을 얘기할 뿐이니 받아들일지 말지는 본인이 정하면 되지.”

▼ 여성들에게 ‘일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하는 원더우먼이 되라’고 강요하는 것 같아요.

“뚱뚱한 여자가 예쁜 옷 입는다고 작은 옷을 억지로 껴입으면 예쁜가? 각자 몸에 맞는 옷이 있듯, 각자 인생에 맞는 삶이 있는 거예요. 남의 기준에 무리해서 맞추지 말고 나한테 맞는 삶을 찾아야지.”

▼ 무조건 여성들한테 ‘나가서 일하라’고 하기보다는 기업, 사회의 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직장을 갖고 싶어도 환경 때문에 못 갖는 여성이 많으니까요.

“기업들한테 여성 인력 채용하라고 내가 20년 넘게 말했어요. 내가 만든 기업 강연 프로그램 중 ‘다양성 매니지먼트’라고 있어요. 기업에서 여성 인력을 어떻게 키워 임원으로 만들 것인지 가르치는 거예요. ‘여성 인력 키우기’라고 하면 남성 임원들이 안 들으니까 이런 이름을 붙였지. 15년간 삼성그룹 계열사 다 돌면서 ‘다양성 매니지먼트’ 교육했고, 여성 인력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렸어요. 여성마케팅 분야 역시 내가 선두주자고. 방송에서야 보통 여성들, 엄마들을 청중으로 하니까 이런 얘기를 안 한 거지 내가 얼마나 여권 신장을 위해 노력하는데. 그리고 사회뿐 아니라 개인이 달라져야 할 점을 공개적으로 말한 게 뭐가 나쁘지?”

▼ ‘힐링’의 시대에 ‘근면’과 ‘성공’만을 강조하는 건, ‘새마을운동’식의 시대에 뒤떨어진 담론 아닌가요?

“하루 종일 TV만 보는 사람한테 슬럼프가 오나요? 열심히 뛰는 사람한테 ‘힐링’이 필요한 거예요. ‘힐링’은 스님들, 신부님들처럼 마음 수양 하신 분이 많이 말씀하시니까, 나 같은 사람은 ‘열심히 달리라’고 채찍질해도 괜찮지 않나?”

2011년부터 토크콘서트 형식의 강연 ‘파랑새’를 통해 매달 500여 명의 청중과 만났다.

“번호표 뽑고 임신해라”

그가 워킹맘에게 특히 큰 인기를 얻은 것은, 그들에게 아주 절실한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해결 방법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책 ‘언니의 독설’에서 “40대 남자부장의 아킬레스건은 돈이 없다는 것이므로 그들에게 밥과 술을 사라” “남자 후배를 남자들의 세계에 ‘첩자’로 삼아라” “제발 번호표 뽑고 임신해라” “시어머니 젊을 때 두 살 터울로 애 낳아라” “낮에만 일하는 ‘알바생’처럼, 여섯시면 사라지는 신데렐라처럼 굴지 말고 회식에도 열외되지 않게 노력하라”라는 등 그가 경험으로 체득한 생생한 ‘워킹맘 생존법’을 전달했다.

▼ 여성에게 가정보다 일이 중요하다는 건가요?

“당연히 아니지. 일과 가정 둘 중 뭘 선택하는지는 가치를 어디 두느냐에 달렸지. 다만 둘은 상반된 게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왕 여자들이 일을 하면서 살 거면 일을 통해 기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열심히 하라는 거지. 마지못해 일하면서 ‘남편이 안 도와주고 일도 힘들어요’ 징징거리며 사는 거 말고. 어떻게 하면 둘 다 이루며 살 수 있는지 고민해야지.”

▼ 능력이 있지만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여전히 많아요. 그런 여성들이 의지가 부족한 건가요?

“얼마나 힘든지 잘 알아. 나도 해봤잖아. 당장 어린이집에 애 찾으러 가야 하는데 부장이 회식하자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어. 하지만 잠깐만 견디면 돼. 요즘은 어차피 애 한둘밖에 안 낳잖아. 애들이 좀 커서 ‘엄마 회사 잘 다녀와’ 하며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해줄 때까지, 무조건 견디는 수밖에 없어요. 회사로서도 잘 키워놓은 여직원이 5년 후 그만두거나 복지제도 잘된 외국계 회사에 가버리면 얼마나 손해예요. 회사에서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여직원을 도와주면 서로 윈윈이지.”

김 원장은 1남 2녀의 엄마다. 대학생 큰딸, 고등학생 아들, 그리고 초등학생인 막둥이 딸까지. ‘국가대표 워커홀릭 엄마’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랐을지 궁금했다. 자녀들에 대해 묻자, 그는 얼마 전 예술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들이 자퇴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아들이 재즈피아노를 치는데, 예고 입시를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채 예고에 갔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음악 이론을 비중 있게 배우니까 시험을 잘 못 보는 거지. 게다가 기본이 없으니 다른 애들한테 뒤처지고 결국 자존감만 떨어지는 거야. 이 애는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은데 학교 공부를 하다보면 영화 볼 시간도 없고. 얘기를 들어보니 2년간 참 힘들었겠더라고.”

김 원장은 자퇴를 고민하는 아들과 3박4일간 여행을 떠났다. 많은 대화를 하며 서로 솔직한 속내를 나눴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는 “학교를 관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꿈을 선택하는 많은 방법 중 하나”라며 아들의 선택을 응원했다. 자퇴 후 가족은 ‘자퇴 축하파티’를 열었다. 지금 아들은 일본에서 영화음악을 공부한다.

김 원장은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 단둘이 1주일간 여행을 간다. 여행하면서 김 원장은 “난 너희가 태어나기 전에 25년을 김미경으로 살았어. 너 때문에 16년간 엄마로 살았으니, 이제 다시 김미경으로 살게”라고 선언한다. 그때부터 그는 ‘엄마 김미경’이 아닌 ‘인간 김미경’으로 아이들을 대한다.

“엄마랑 자식이랑 참 친한 것 같지만, 실제 얘기하는 거 얼마 안 돼요. 초등학생 때까지는 그저 어리고, 대학 가면 품을 떠나. 엄마와 자식이 인간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중·고등학교 6년뿐인데 엄마는 그 귀한 시간에 만날 ‘밥 먹었니’ ‘공부해라’ 이런 말만 하는 거야. 나는 가족에서 인간적인 고민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이 모든 걸 믿고 털어놔. 꿈, 하고 싶은 일, 고민, 남자친구 이야기, 학교 다니기 싫다는 얘기…. 우리 애들은 엄마한테 ‘학교 다니기 싫다’고 말하는 거 겁 안 내요. 나도 우리 애들한테 내가 학생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다 얘기해줬거든. 우리 딸은 ‘나도 엄마처럼 애 셋 낳고 엄마보다 더 성공할거야’라고 말해요. 그렇게 서로 솔직하게 대하다보면 인간적으로 관계가 쌓이는 거예요.”

맞벌이와 ‘맞밥’

그는 ‘공정한 결혼’을 주장한다.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은 해 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대생들에게 “서른 갓 넘은 남자가 제 힘으로 집을 못 사는 게 정상인데 왜 너는 ‘불공정거래’를 원하냐”며 호통을 치고, 집안일을 등한시하는 남성에게는 “맞벌이를 원하면 ‘맞밥’을 하라”고 요구한다.

“결혼은 평생을 투자하는 건데 서로가 가진 돈이 아니라 가능성을 보고 결혼해야지. 노력 없이 얻는 거 말고 건강한 ‘창업정신’을 갖고 배우자를 고르란 말이야. 특히 일하는 여자한테는 가난한 남자가 딱이야. 그런 남자는 겸손하고 일하는 걸 배려해주거든. 남자도 헐값으로 사서 금값으로 키워야지.”

그렇다면 그의 남편은 어떨까. 그는 진정 공정거래를 하는 좋은 남편일까? 김 원장은 “내가 얼마나 ‘맞밥’에 한이 맺혔으면 강의 때 그런 말을 하겠냐”며 웃었다.

“쉰 넘은 전형적인 한국 남자가 ‘맞밥’을 했겠어요? 그런 남자랑 살면서 내가 평생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으니, 얼마나 많이 힘들었겠어. 강의 때 그런 말을 하는 건 내 딸들은 나 같은 고민을 안 했으면 해서야. 하지만 난 우리 남편을 참 존경하고 인정해요. 내 남편과 나는 운명과 인생이 달라. 태어난 곳도, 환경도, 꿈도, 운명도. 그저 우리는 서로 잘살 수 있게 도와주고 지켜봐주는 ‘동업자’야. 누군가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부부관계는 결코 건강할 수 없어요.”

김 원장은 봄부터 다시 바빠질 예정이다. 방송 강의도 시작하고 연말에는 소극장 공연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 다만 이전에는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너도 이만큼 열심히 살아라”라고 했다면, 이제는 “너 혼자만 힘든 게 아니야”라며 함께 일어서는 방법을 나눌 생각이다. 지난해 ‘운명의 추’는 그를 강하게 강타했지만, 그 덕에 그는 좀 더 따뜻하고 여유로워졌다.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4년 3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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