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식 “석달 전엔 日서 빠찡꼬 조립… 이젠 ‘제2의 강민호’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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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사회인야구 출신 포수 정규식

고양 원더스 포수 정규식이 10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경기장 안에 있는 야구실내연습장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내야수였던 그는 교토국제고 3학년 때 주전 포수가 갑자기 야구를 그만두는 바람에 마스크를 썼다. “고시엔에 가고 싶은데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가 그가 밝힌 이유다. 아래는 오사카가쿠인대 재학시절의 정규식. 고양 원더스·정규식 제공
고양 원더스 포수 정규식이 10일 제주 서귀포시 강창학경기장 안에 있는 야구실내연습장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내야수였던 그는 교토국제고 3학년 때 주전 포수가 갑자기 야구를 그만두는 바람에 마스크를 썼다. “고시엔에 가고 싶은데 아무도 안 한다고 해서”가 그가 밝힌 이유다. 아래는 오사카가쿠인대 재학시절의 정규식. 고양 원더스·정규식 제공
《 한국 최초의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12일로 창단 2주년을 맞았다. ‘열정에게 기회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운 원더스는 그동안 17명(지난해 5명·올해 12명)을 프로 구단에 보내며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다음은 내 차례’라고 간절하게 다짐하는 원더스 선수 50명은 지난달 19일부터 제주도에서 마무리 훈련을 하고 있다. 9∼11일 서귀포시 강창학경기장을 찾아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원더스 선수들의 열정을 느껴봤다. 》

“난 꿈이 있었죠/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간직했던 꿈”

우리는 모두 패자 부활전을 꿈꾼다. 세상에 나온 지 16년이나 된 ‘거위의 꿈’을 여전히 많은 가수가 다시 부르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야구에서는 고양 원더스가 바로 그 무대다. 지난해 왼손 투수 이희성(25)이 프로야구 LG에 입단하면서 원더스 선수들의 가능성은 처음으로 현실이 됐다. 넥센 안태영(28)은 올 7월 27일 경기에서 원더스 출신 타자로는 처음으로 1군 무대에서 홈런을 날렸다.

○ 日야구 배운다는 부푼 꿈

“혹 때론 누군가가/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홀릴 때도/난 참아야 했죠/참을 수 있었죠/그날을 위해”

원더스 포수 정규식(23)은 석 달 전만 해도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빠찡꼬 가게에서 일했다. 빠찡꼬 기계를 조립하고 당첨 확률을 조정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매일 오후 1시까지 이 일을 해야만 그 뒤로 퇴근 전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다.

경기 성남시에 자리 잡은 성일중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국제고로 야구 유학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이런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줄 그는 몰랐다. 야구부원만 200명이 넘는 야구 명문 오사카가쿠인대에서도 그는 엄연히 주전이었다. 부모님은 그의 성공을 기대하며 1년에 100만 엔이 넘는 학비를 부담했다. 당시는 100엔이 원화로 1600원이 넘던 시절이었다.

○ 야구 접고 귀국

“늘 걱정하듯 말하죠/헛된 꿈은 독이라고/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퇴근 후 마음껏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배팅볼을 하루에 30∼40개 치면 많이 훈련한 것이었다. 공격보다 수비가 더 중요한 포수 포지션이었지만 배터리 코치에게 지도를 받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평생 운동만 한 선수에게 빠찡꼬 가게 일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게다가 팀 동료들이 가게 홀에서 일할 때 그는 홀로 가게 구석을 지켜야 했다. 일본 생활을 8년이나 했지만 그는 엄연히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정규식은 “억지로 해야 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운동이 안 될 때가 많았다”며 “그래도 일본말은 할 줄 아니까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야구도 일본 생활도 접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김성근 감독과의 꿈같은 만남

“그래요 난 꿈이 있어요/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그 선택이 운명이 됐다. 정규식은 귀국길에 공항에서 고교 시절 학교 이사장을 만났다. 이사장은 동향(도쿄) 출신이라 인연이 있는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이사장은 정규식에게 그 자리에 함께 가자고 했다. 정규식은 “당연히 따라가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김 감독은 그의 이름 석 자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 감독님께서 특강을 오신 적이 있었다. 그때 인사를 한 번 드렸을 뿐인데 내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라며 “정말 뭐라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야구를 그만두기로 했다는 정규식에게 김 감독은 명함을 남기며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규식은 원더스와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 두 번째 쓰는 야구 인생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저 하늘을 높이 날 수 있어요/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내 삶의 끝에서/나 웃을 그날을 함께 해요”

원더스에 입단하자 모든 게 변했다. 이제 그는 원하면 하루에 배팅볼을 1000개도 때릴 수 있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배터리 코치로 뛰었던 스승들로부터 수비 자세도 점검받을 수 있다.

그는 LG와의 연습 경기에서 이대형(현 KIA)의 도루를 잡아내는 걸로 8년 만의 한국 무대 신고식을 치렀다. 정작 일본에서만 뛰었던 그는 경기 후 이대형이 얼마나 빠른 주자인지 몰랐다고 했다. 그는 국내 프로야구에 젊고 재능 있는 포수가 드물다는 사실도 잘 몰랐다. 원더스 관계자는 “롯데 강민호(28)가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75억 원 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훈련 때 더욱 기운을 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대신 일본 프로야구에서 뛴 이승엽은 잘 안다. 그는 배팅볼을 던져주던 김광수 코치에게 “이승엽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의 타격 자세를 흉내 내 공을 쳤다. 홈런이었다.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고도 2시간 넘게 계속된 이날 타격 훈련은 그 홈런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서귀포=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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