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몸과 마음을 함께 보는 ‘뫔’ 연구소, ‘학문의 세속화’를 추구하는 연구소입니다.”(김종갑 건국대 몸문화연구소장·영어영문학과 교수) 최근 흥미로운 제목을 단 연구서 두 권이 잇따라 출간됐다. ‘포르노 이슈: 포르노로 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이야기’(그린비), ‘권태: 지루함의 아나토미’(자음과모음). 각각 철학과 영문학, 진화학, 여성학, 국문학 등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야동’을 본 뒤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었던 경험을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해부한 책이다. 두 책 모두 몸문화연구소의 연구 성과물이다. 몸과 관련된 다양한 문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2007년 설립된 이 연구소가 궁금해졌다. 》
14일 건국대 서울캠퍼스 안에 있는 몸문화연구소에 들어서자 김 소장은 초면의 기자에게 다짜고짜 ‘영입 제안’부터 했다. “다음 세미나부터 꼭 나오세요. 생생한 현장 취재에 익숙한 언론인이 연구원으로 필요합니다.”
이 연구소 융합연구의 비결은 그런 식으로 이뤄졌다. 연구소는 매년 주제 하나를 정해놓고 매달 한 차례씩 세미나를 열어 각자의 연구 상황을 발표한다. 세미나에는 전임연구원은 물론이고 다른 대학의 교수, 한의사, 정신과 의사, 출판사 대표로 이뤄진 객원연구원까지 20여 명이 참석한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 매년 두 차례 학술대회를 열고 책으로 펴낸다. 지금까지 기억, 폭력, 자살을 주제로 다뤘고, 올해는 행복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연구소의 목표는 ‘타자화된 몸의 주체화, 소외된 몸의 회복’이다. “대중매체와 소비사회는 아름다워지는 법, 건강해지는 법으로 가득합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산업의 손에 쥐여 있죠. 그렇게 소외된 내 몸을 어떻게 내 것으로 되돌려 주체화할 수 있을까를 탐구합니다.”(김 소장)
김 소장이 몸 연구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비염 때문이었다. “몸이 불편하지 않으면 몸을 의식하지 못해요. 비염에 걸리니 머릿속에서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숨 쉬는 것을 계속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개인의 실존적 상황을 좌우하는 몸을 학문적으로 규명하고 싶었죠.”
임지연 연구원(국문학)은 “결혼 전에는 자유로워서 내 몸을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이 둘을 낳고 몸이 육아에 얽매이다 보니 몸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며 “이를 국문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해 연구소에 합류했다”고 말했다.
이달 초 연구소는 ‘파란 행복, 빨간 행복’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서윤호 연구원(건국대 법학 연구교수)은 “영화 ‘매트릭스’처럼 파란색과 빨간색은 각각 가짜 행복과 진짜 행복을 가리킨다”며 “위선으로 가득 찬 행복에 갇혀 살지, 행복을 현실적으로 들여다볼지 성찰하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앞으로 연구소는 성매매를 다룬 책을 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 3명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었다. 또 미소를 강요받는 감정노동자에 주목해 ‘감정’을 주제로 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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