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균 前재경 “군사정부시절 軍 권총협박에도 국방비 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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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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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전재정포럼’ 총괄대표 강봉균 前 재경부 장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 4·11총선 때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뒤 야인(野人)으로 지내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건전재정포럼’의 총괄대표를 맡으며 ‘재정건전성 지킴이’로 나섰다.

자신도 10년 이상 몸담았던 정치권이지만 여야 가릴 것 없이 급속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경쟁에 빠져드는 걸 지켜보면서 ‘경제관료 강봉균’의 피가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강 전 장관은 “곳간을 지켜야 할 맏며느리(재정당국)가 눈치 보며 인기 얻겠다고 살림하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며 후배 관료들에 대한 꾸중도 잊지 않았다. 23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정치권이 복지 확대 경쟁에 몰두한 지금 ‘건전재정’이란 말이 오히려 낯설게 들린다.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재정위기 등으로 세계경제가 어려운 이때 새로 출범할 정부의 최대 과제가 ‘보편적 복지’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남유럽 국가 경제가 이렇게 된 게 불과 5, 6년 사이 일이다. 정부가 까딱 잘못하면 건전재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심각한 문제란 걸 알아도 국민들의 피부에는 잘 와 닿지 않는 부분이다.

“정부와 정치권 어디에도 ‘복지의 부작용’을 제대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경제관료 출신으로 더는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복지 확대로 나랏빚을 마구 늘리면 국가경쟁력이 뭐가 되겠나. 건전재정에 공감하는 전직 관료와 재정학회 등 학계가 뜻을 모았다. ‘정치 중립적’으로 복지 포퓰리즘이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토론하는 장을 만들 것이다. 그저 그런 ‘조찬모임’이 아니다. 대학생들과 인터넷 공개토론회를 갖고 논문 공모전도 열 생각이다.”

‘건전재정포럼’은 26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창립식을 연다. 100여 명의 발기인에는 강경식 진념 전윤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 정권, 성향을 막론한 역대 경제부처 수장(首長) 출신 고위 관료들과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 송희영 조선일보 논설주간, 신상민 전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강정 전 iMBC 사장 등 전현직 언론인 등이 포함됐다.

―요즘 정치권에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등 ‘무상 시리즈’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무상이라는 단어부터 잘못됐다. 국민세금이 들어가는데 왜 무상인가. 정부의 일반재정을 투입하는 보편적 복지에는 문제가 있다. 복지의 근간은 사회보험이어야 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도 조금씩은 부담할 필요가 있다.”

―최근 정부도 정치권의 압박에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군사정부 시절 예산관료들은 ‘총으로 쏴 버리겠다’는 군인들의 협박에도 과감히 국방예산을 삭감하던 기개가 있었다. 요즘은 정부가 재정규율을 지키려 해도 정치권 등에서 온갖 압력을 넣어 힘을 뺀다. 민주통합당 안에서 이런 얘기를 참 많이 했는데 다들 듣기 싫어하더라.”

‘예산실 협박사건’은 28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정부 예산실에 전해지는 일화다. 그가 예산심의관(국장)이던 1984년 문희갑 당시 경제기획원 예산실장과 함께 국방예산에 칼을 대자 합동참모본부 육군 준장 2명이 권총을 차고 찾아와 “군을 뭐로 알고 방위비 편성 기준을 함부로 깨뜨리나”라며 협박했다. 소동 직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더욱 소신껏 하라”며 예산실을 격려한 뒤 두 장성을 좌천시켰다.

―최근 복지 확대 요구가 커진 이유는 뭔가.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절망, 대기업에 취직해야만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오늘날의 복지 포퓰리즘을 낳았다. 이를 악물고 도전해 봐야 불공정한 경쟁질서 탓에 올라설 수 없으니 절망한 청년들이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복지를 요구하는 것 아니겠나. 실패해도 재기(再起)할 수 있다면 왜 정부에 손을 벌리겠는가. 유럽 사람들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일할 힘이 있으면 ‘내가 노력해서 잘살아 보자’는 생각을 한다. 이런 국민들을 위해 정부와 대기업이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한다.”

―최근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제민주화’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적어도 위기 때에 정부와 국민들의 노력으로 큰 대기업이라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한다. 상당수 대기업들은 수출도 늘고 이익도 느는데 고용은 안 늘린다.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깎으니 중소기업들은 임금을 못 올린다. 그러니 사회적 불만이 쌓이고 복지 요구만 늘어나는 것이다.”

―기업들로서도 노사 관계 등 답답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정치권이 바로 그런 문제를 챙겨야 한다. 정규직 임금 올려주느라 대기업은 하청단가를 쥐어짜고, 그렇게 보호받은 정규직의 힘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정치권, 특히 야권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 민노총과 어떻게 하면 정치적 연대를 할까 이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면서 무슨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말인가.”

―최근 정부가 경기침체에 대응해 여러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주택 취득세,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준다는데 그 정도로는 경기진작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민주당에서 9억 원 이상 주택에 양도세를 면제해 주는 걸 두고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당내에 좌파 이념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한심한 얘기다. 정치권 일각에서 증세(增稅)로 문제를 풀자고 말하지만 이 역시 현 경제상황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고 하는 소리다. 경제민주화보다 국민들이 더 시급히 요구하는 게 정치 변화라는 걸 정치인들 스스로 인식해야 한다. 그걸 모르고는 미래가 없다.”
■ 강봉균은 누구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1961년 군산사범학교 졸업
△1964년 서울대 상학과 입학
△1968년 고등고시 6회로 공직 입문
△1996년 정보통신부 장관
△1999년 재정경제부 장관
△2002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군산) 당선 후 3선
△2012년 19대 총선 공천 탈락, 민주통합당 탈당 및 정계 은퇴
△2012년 9월 군산대 석좌교수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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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강봉균#건전재정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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