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45>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下化衆生)

  • Array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187>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송월주 스님이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종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적 단합을 호소하고 있다. 송월주 스님 제공
송월주 스님이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종교계 지도자들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적 단합을 호소하고 있다. 송월주 스님 제공
최근 종교 간 갈등과 정부의 종교 편향 시비가 불거졌지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내가 총무원장으로 있던 시절에도 크고 작은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을 갓 넘긴 1993년 4월에는 한 부대의 지휘관이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부대 내 법당과 성당을 철거하고 불상을 불태웠다. 1995년에는 YS가 국군중앙교회 예배에 참석하면서 과잉 경호로 불자들의 법회를 방해해 물의를 빚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종교 편향 시비가 계속된 가운데 2008년 서울광장에서 불교 종단들이 대거 참여한 범불교도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종교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 지도자들의 자세다. 이들이 이웃 종교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신자들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종교국가인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종교들이 공존해온 아름다운 전통을 갖고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세계 각지에서 폭력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60년대 청담 스님(불교), 노기남 대주교(가톨릭), 한경직 목사(개신교)는 종교 간 화합의 상징이었다. 이 만남은 나를 포함한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로 이어졌다.

정부의 태도와 역할도 종교평화의 정착을 위해 중요하다. 양자는 모두 헌법상의 가치인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서로의 필요에 따라 정치가 종교를, 종교가 정치를 이용하면 불행한 일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가깝게는 조계종 종단사가 대표적 사례이고, 중세 서구 교회의 부패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실제 총무원장으로 불교계를 대표할 때 각 정당의 총재나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나를 만날 필요가 있으면 총무원 청사를 방문하도록 했다. 불교와 관련된 일 때문에 만날 일이 있을 때에는 공개적으로 만났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적인 이유나 개별적인 만남은 사양했다. 포용력이 큰 불교는 종교평화에 기여할 요소가 많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1996년 10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를 창립해 2년간 공동 대표의장 겸 이사장을 지냈다. 기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종교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에 아쉬움이 있어 창립을 결정했다. 당시 최근덕 성균관장과 조정근 원불교 교정원장, 김광욱 천도교 교령,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등이 참여했다.

종교인들이 힘을 모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대표적인 분야가 인도적 지원을 통한 평화통일 기반 만들기와 국민화합,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등이다. 외환위기와 대북 식량난, 동남아 등지의 자연재해 등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여러 종교가 적극적으로 참여해 위기 극복에 일조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시민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웃 종교계 지도자와 시민운동가들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불교 천도교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학도병 징집을 피하기 위해 묘향산의 암자에 숨어 지냈고 천도교 교리에도 밝다. 최 관장은 유학자이자 문필가로 유교 현대화를 위해 노력해 왔고, 한양원 회장은 친화력이 뛰어나고 겸손이 몸에 배어 있다.

대한성공회 김성수 주교는 진보적인 신앙관을 갖고 있지만 다른 성향의 목소리에도 귀를 열어 놓고 있고, 보수적인 개신교 신자인 손봉호 교수는 청렴하고 원칙을 지키는 삶으로 존경을 받는다.

이세중 변호사는 환경과 통일 등 여러 분야에서 나와 함께 활동했다. 그는 “공직도 의미가 있지만 시민운동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법무장관과 국무총리직 제안을 사양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제 만나도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종교, 내 신앙이 옳다 그르다 하는 불필요하고도 비생산적인 시비보다는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 왔다.

자비와 사랑, 인의 등 각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것은 다른 길이 아니다.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모두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위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 중생을 구제한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46>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10여 차례 방북했던 북한과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