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길/송월주 회고록] ⑦ 전두환 前대통령… “인과의 수레바퀴 기억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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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불교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참으로 얄궂은 것이었다. 1989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 주지 도후 스님과 함께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 DB
불교와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참으로 얄궂은 것이었다. 1989년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백담사 주지 도후 스님과 함께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 DB
“(그 일은) 아랫사람이 했고, 몰랐지만 대통령으로서 미안합니다.”(전두환 전 대통령)

“개인뿐 아니라 불교 전체에 끼친 피해가 막대합니다.”(송월주 총무원장)

“보안사서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이순자 씨)

“무엇을 따지려고 모신 건 아닙니다만, 그건 맞지 않은 말들입니다.”(총무원장)

1997년 말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청사. 불교식 합장으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눈 뒤 1시간 남짓 진행된 대화는 10·27법난이 화제에 오르는 순간 어색함과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앞서 불교계에 참혹한 피해를 끼친 1980년 10·27법난을 언급한 바 있다. 나는 당시 ‘구국영웅 전두환 장군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세 차례 거절한 뒤 23일간의 불법 구금 끝에 총무원장에서 물러났다.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하고 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자신이 지시했다고 밝혔지만,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법난의 최종 책임자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8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 이어 1981년 2월 간접선거를 통해 제1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7년간의 철권통치가 이어졌다. 국가원로자문회의 등 여러 방책으로 자신의 손에 권력을 붙들어 매려 했던 권력자는 결국 5공·광주청문회를 거쳐 백담사에서 769일을 보냈다. 나는 1994년 12월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복귀했다.

법난 이후 돌고 돌아 이렇게 17년 만에 마주한 것이다. 몇 차례 짧은 조우는 있었지만 제대로 된 대화는 처음이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런 말들이 떠올랐다. 권력은 무상하다. 역사는 인과(因果)의 수레바퀴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간들은 그 역사 앞에서 얼마나 작고 초라한가.

말 그대로 이 만남은 누구를 추궁하고 따지려고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어느 날 조계사 주지 현근 스님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조계사에서 매주 한 차례 참회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왜 기도만 하고 가냐”며 보자고 한 것이었다. 불교는 무상(無常)의 이치다. 기억은 생생했지만 평정심 속에서 그를 만났다.

이에 앞서 10월 설악산 신흥사에서 열린 통일대불 점안 법회에서도 잠깐 만났다. 그의 축사는 자신이 물가를 잡고 경제를 살렸는데, 뒷사람이 망쳐놓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백담사 주지로 인연을 맺은 도후 스님이 신흥사 주지여서 참석한 모양이었다. 도후 스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천수심경(千手心經)을 달달 외운다. 추울 때도 108배를 거르는 법이 없었다”며 백담사 생활을 전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과의 악연은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때 다른 종교인들과 함께 참석하면서 시작됐다. 그때 나는 이 모습을 지켜보며 “쿠데타로 권력을 빼앗고 5·18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국민들 마음을 살 수 없다. 끝이 좋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급기야 그는 대통령 퇴임 뒤 여론에 밀려 1988년 대국민 사죄와 함께 재산 헌납을 약속하고 백담사행을 발표했다. 그때 절집에서는 “불교를 패가망신시켰는데 왜 하필 사찰이냐”는 반대가 비등했다. 당시 법난진상규명추진위원회 대표였던 나는 “참회하러 가는데 막지 않는 게 좋겠다. 절집서는 흉악한 짐승도, 죄인도 내쫓지 않고 받아들이는데 그런 법이 아니다”라며 만류했다. 지옥중생도 건져야 하는 불가에서 죄과가 많다고 자비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원래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이 베드로였던 전 전 대통령은 백담사 생활 뒤 불교 신자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가 잡고, 경제만은 내가 잘했다는 식의 큰소리보다는 지금보다 훨씬 자신을 낮추는, 끝없는 하심(下心)을 권하고 싶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라네) 욕지래생사 금생작자시(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에 하는 일이 그것이라네).’

웬만한 스님보다 경전에 밝다고 하니, 이 뜻을 잘 알리라 본다. 모든 인과는 실오라기에서 시작된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⑧회에서 송월주 스님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달리 독실한 불자였지만 법난의 주모자가 됐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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