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의 이발사 “내 도전은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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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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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이상수씨 블로그하며 책도 발간
밤에는 대학생… “복지분야 취업 목표”

나이 칠십에도 도전할 게 많다는 황혼의 이발사 이상
수 씨. 최근 자전적 에세이를 펴낸 그는 야간 대학에
다니고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희망과 도전의
삶을 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나이 칠십에도 도전할 게 많다는 황혼의 이발사 이상 수 씨. 최근 자전적 에세이를 펴낸 그는 야간 대학에 다니고 매년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희망과 도전의 삶을 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4일 오후 광주 북구 임동 삼화온천 내 이발소. 이발소와는 어울리지 않게 창가 쪽 책꽂이에 영어책과 노인복지 관련 전공서적이 꽂혀 있다. 책꽂이 옆에는 낡은 노트북 컴퓨터가 놓여 있다. 손님이 뜸해지자 칠순의 이발사가 컴퓨터를 켰다. 능숙한 솜씨로 블로그를 검색하던 이발사는 “오늘은 방문자가 별로 없네요”라며 웃었다.

현역 이발사 이상수 씨(71)는 지난달 26일 광주에서 가족과 지인을 초청해 고희연을 겸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그가 펴낸 책은 자전적 에세이 ‘이상수의 즐거운 날’(시와 사람 펴냄). 그는 “한없이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삶이었지만 자식에게,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남기고 싶은 얘기가 많아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책을 냈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태어난 이 씨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1960년 초 군대에서 이발기술을 배운 그는 이발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다. 1970년대 번화가인 금남로4가에서 광주 최대의 이발관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1980년대 초 이발업이 ‘퇴폐업’이라는 오명을 쓰면서 문을 닫아야 했다. 그는 “퇴폐영업을 하지 않고 2년을 버텼는데 결국 종업원들이 돈벌이가 시원치 않다며 모두 떠났다”며 “이후 목욕탕 내 이발관을 전전하게 됐지만 열심히 살아온 덕에 2남 1녀를 남부럽지 않게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낮에는 이발사지만 밤에는 대학생이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해 마음 한구석에는 배우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있었다. 집 근처 야학 문을 두드린 지 1년 만인 2007년 4월 검정고시 중학교과정을, 그해 8월에는 고교과정을 각각 마쳤다. 내친김에 대학에 진학해 현재 광주의 동강대 노인복지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청년시절 결핵을 앓고 9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은 터라 건강의 중요성을 실감한 이 씨는 5년 전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는 매년 3월 1일 광주에서 열리는 3·1절 기념 전국마라톤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3년 전부터 하프구간을 뛰고 있는 그는 65세 이상 고령으로는 최고기록(1시간 46분 9초)을 보유하고 있다. 인생 황혼기를 더 바쁘게 사는 이 씨는 이루고 싶은 꿈이 또 하나 있다. “내 손으로 이력서를 써서 당당히 노인복지 분야에 취업하고 싶어요. 누가 받아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도전은 해봐야죠.”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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