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은 날 다음으로 가장 기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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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은행-삼성생명 ‘여성가장 창업지원’ 200번째 가게 여는 김현희 씨

“오늘 정말 덥죠. 길 다닐 때도 어깨 부딪치지 마시고 조심하세요. 싸움 나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일 서울 송파구 석촌동 시영아파트 후문 근처에 있는 세탁편의점 ‘빨래 왕자 드라이 공주’ 사장인 김현희 씨(41)가 함박웃음을 띠며 분주하게 손님을 맞았다. 김 씨는 22일 개업식을 한다. 세탁편의점을 연 지는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그간은 일이 손에 익지 않아 개업식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 낳은 것 다음으로 제 인생에서 가장 기쁜 일이죠.”

김 씨는 1998년 남편과 이혼했다. 당시 남은 것은 보증금 500만 원짜리 월세방과 현금 3만 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주부로 살다가 갑작스레 여성가장이 된 29세의 김 씨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일곱 살짜리 외동아들을 키우기 위해 김 씨는 학습지 강사를 하다가 보증금 200만 원짜리 보세 의류 가게를 여는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나중에는 가게를 내줘야 해서 이 아파트 저 아파트를 떠돌며 알뜰장터에서 의류잡화를 팔았어요. 바람이 거센 날이면 텐트가 날아갈까봐 걱정스러웠죠.”

낮에는 일하고 밤에 아이를 재운 뒤 시장을 보고 음식을 만드는 등 밀린 집안일을 했다. 허리가 휘게 일해도 생활은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김 씨는 최근에야 대출금을 합해 보증금이 2500만 원인 방 2개짜리 월세방으로 이사했다. 아들만은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한 세탁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김 씨에게 사회연대은행-삼성생명의 ‘여성가장 창업지원사업’이 손을 내밀었다. 2002년 7월 시작된 이 사업은 매년 심사를 거쳐 20여 명의 빈곤 여성가장에게 창업자금 20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올 3월에 지원한 김 씨는 사업계획서 심사, 면접 등을 거쳐 5월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김 씨는 창업지원금에 모아두었던 돈을 보태 8평(26.4m²)가량 되는 이 세탁편의점을 열었다. 김 씨의 가게는 여성가장 창업지원사업이 지원해 문을 연 200번째 가게다.

사회연대은행은 자활 의지와 능력이 있는 취약계층에 자금과 경영, 기술 등을 지원하는 비영리 소액대출 기관이다. 다른 대출 사업은 대출자가 저금리로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만 여성가장창업지원사업은 상환 없이 창업 자금을 ‘그냥’ 지원하는 사업이다. 삼성생명 보험 설계사들이 새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200원씩 떼어놓고 회사가 같은 액수만큼을 보태 기금을 마련한다.

“처음에 창업자금을 지원받는다는 얘기를 어머니가 듣고 난리가 났어요. ‘이상한 대출’ 아니냐고요. 나중에 폭력배라도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셨나 봐요. 지금은 감사한 일이라고 하시죠.”

2007년 여성가장창업지원으로 개업한 50개 점포를 대상으로 월 매출액을 조사한 결과 점포당 평균 533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지원받은 여성가장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창업 뒤 가장 크게 변화된 것으로 응답자의 절반이 “자신감이 생겼다”를 꼽았다. 응답자의 21%는 “가정이 안정됐다”고 답했다.

김 씨는 의류잡화를 판매했던 경험을 살려 세탁편의점의 여유 공간에 의류와 모자 등을 비치해 두고 팔고 있다. 지금은 세탁소에 손님이 많지 않은 계절이고, 아직 가게를 연 지 얼마 안 돼 단골도 많은 편이 아니지만 성실히 일하면 손님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내 가게가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요. 열심히 일해 이제 사회에 진출할 내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거예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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