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탈북 대학생 복서 최현미 씨가 본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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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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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은 많은데
왜 모두 “대학… 대학…” 외길인가요?

《25일은 6.25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0주년이 되는 날이다. 적잖은 학생들은 6.25한국전쟁을 ‘역사 속의 한 페이지’ 정도로 여긴다. 하지만 둘러보면 분단이란 특수상황과 관련된 이슈와 사건, 사람은 늘 우리 주변에 있어왔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누적 탈북자 수는 3만 명에 이른다. 대학 캠퍼스는 물론 초중고교에서도 함께 수업을 받는 탈북학생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탈북학생들은 어떤 시각으로 한국 교실과 학생들을 바라볼까. 전혀 다른 교육환경에서 어떤 차이를 느낄까. 탈북 복서로 알려진 최현미 선수(20·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를 만났다.》
평양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그는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유치원에 다닐 땐 어린이들의 재능을 뽐내는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라는 북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춤 솜씨를 선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땐 대동강을 횡단할 정도의 수영 실력을 갖췄다. 싱크로나이즈드스위밍, 수구(水球)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체격이 좋고 운동능력이 뛰어났던 최 선수는 일찌감치 선수로 발탁됐다. 13세 때 북한의 김철주사범대학 복싱 양성반에 들어갔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발탁한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복싱을 배우던 중 최 선수는 2004년에 가족과 함께 평양을 탈출해 한국에 왔다.

최 선수는 한국의 일반중 2학년에 편입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수업 시간에 교사와 학생이 자유롭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교사는 곧 ‘하늘’로 통했던 북한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최 선수는 “북한에선 수업 시간엔 학생들이 숨소리조차 내기 어렵다”고 했다. 친구들은 “북한학생들은 어떤 운동을 좋아하냐” “북한학생들도 학원에 다니느냐”면서 수시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최 선수는 “학교 친구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리면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난생 처음 배운 영어는 학업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 북한에서 그는 한반 40∼50명 중 늘 1, 2등을 다퉜다. 오빠 최현성 씨(23·연세대 러시아어과)는 늘 전교 1등일 정도로 수재였다. 하지만 북한에선 영어 대신 러시아어를 배웠다. 알파벳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유창하게 영어로 말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교과서의 다이얼로그를 외워 말하는 수행평가를 위해 그는 교사의 발음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 ‘달달’ 외웠다. 그래도 성적은 예전만 못했다. 최 선수는 한국학생들 틈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보여주자’는 각오로 권투를 시작했다.

“복싱이 그냥 맞고 때리는 운동인 것 같죠? 하지만 ‘한 방’은 수백, 수천 번의 연습 끝에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때렸다’가 아니라 (기술을 실현)‘했다’가 맞아요.”

발랄한 여대생의 눈빛이 링 위의 챔피언으로 변했다. 최 선수는 “순간적인 집중력은 연습에서 나온다. 링 위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이 본능적으로 나올 때까지 연습한다”고 말했다.

최 선수에게 서울의 남산은 아픔의 장소다. 남들은 추억을 만드는 곳이지만 그는 이곳에서 매일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남산 순환로를 따라 6km를 달려 몸을 푼 후엔 남산에 오르는 600개가 넘는 계단을 10회 오르내리며 왕복한다. 다리에 힘이 풀려 네발로 기다시피 정상에 오르면 3.5km 조깅트랙을 열 바퀴 더 뛴다. 경기가 끝나고 훈련했던 곳을 다시 찾으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짠해져 ‘현미야… 정말 고생 많았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단다.

“어릴 때 부모님은 제가 교사가 되길 바랐어요. 북한에서 선호하는 직업 중 하나죠. 그런데 전 생각이 달랐어요. 오빠는 공부를 잘했어요. 북한에서도 늘 성적우수자만 모은 특별반에서 공부했고 한국에 와서도 제대로 수능을 치러 명문대에 입학했고요. 근데 저는 운동을 좋아해요. 그럼 저는 운동을 해야죠.”
동아일보 자료사진
동아일보 자료사진

부모는 복싱을 하겠다는 딸의 선택에 대해 “좋아하고 잘할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단 그 분야에서 최고가 안 될 생각이면 시작도 말라”고 했다. 최 선수는 “복싱을 좋아하지 않으면 매일 울면서 하는 고된 훈련을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느냐”면서 “결국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켜서 뿌듯하다”고 했다. 최 선수의 미니홈피 제목은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다.

대학 캠퍼스에서의 생활도 즐겁다. 이번 학기엔 심리학, 인체해부학, 스포츠교육학 등 수업을 듣고 있다. 최근 심리학 수업에서 교수와 나눴던 진지한 대화도 기억에 남는다. “신이 자네를 운동을 하라고 만든 존재라고 생각하느냐”는 교수의 질문에 최 선수는 “운명은 스스로 노력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교수, 친구들로부터 오는 자극은 최 선수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준다. 체육관, 집, 전지훈련지 등을 오가며 바쁜 중에도 최 선수에겐 다양한 한국 친구를 만나 에너지를 충전한다. 주변엔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시작한 친구들도 있다. 미용, 요리, 운동 등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당당하게 자기 길을 개척하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가 명문대에 가서 판사, 검사, 의사, 외교관이 되길 바라세요. 모든 사람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자기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최 선수는 대학이라는 획일적인 목표를 가지고 밤을 새우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처음 한국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발랄함으로 자기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지금 최 선수에겐 세계 챔피언 10차 방어전까지 성공하는 목표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매사에 죽을힘을 다하는 데서 오는 자신감 덕분에 원하는 어떤 일을 해도 잘해 내리라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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