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새내기 철학입문서’ 20선]<15>영화 속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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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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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는 액션만 볼 게 아니었다
◇영화 속의 철학/박병철 지음·서광사

《“나는 철학의 문제들은 일상의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일상사들을 그리고 있는 친근한 매체인 영화는 그래서 철학적인 사고의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영화들의 원작이 문학작품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좋은 영화는 곧 인문학적 사유와 상상력의 튼튼한 기초 위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화려한 액션도 볼거리지만 철학적 주제를 두고두고 곱씹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매트릭스는 ‘실재(Reality)란 무엇인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배경에 깔고 있다. 이 영화는 또 철학을 뛰어넘어 종교적 주제와도 연결된다. 저자는 매트릭스가 기독교적 구원을 나타내는 플롯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매트릭스 안에서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므로 불교적 해탈이라는 주제도 전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영화 14편의 줄거리를 흥미롭게 풀어놓고 각각의 영화에서 엿볼 수 있는 철학 주제들을 쉽게 설명한다. 저자가 머리말에 밝힌 대로 “철학을 접한 적 없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써졌다.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대해서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프랑스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인용해 페미니즘을 설명한다. ‘세기말’을 통해서는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가치 상실의 징후와 행복의 조건을 얘기한다. 휴 그랜트 주연의 ‘잉글리쉬 맨’을 바탕으로 진리와 가치에 대한 저자의 지상(紙上)강의를 듣는 것도 흥미롭다.

법은 언제나 정의의 편인가.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레인메이커’는 때때로 법의 이름으로 부정의가 일어나는 문제를 다뤘다. 신참 변호사 루디 베일러(맷 데이먼)가 진실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플라톤은 인간이 이성의 능력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를 ‘이데아’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데아에의 열망을 ‘에로스’라는 말로 표현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를 꿈꾼다. 루디는 물질적 보상과 상관없이 자기 신념대로 행동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루디가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법의 이상에 가까워지려는 에로스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조셉 러스낵 감독의 영화 ‘13층’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로 첫 장면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들이 1937년의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모델로 한 가상현실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 속에서 사는 사이버 인간들은 자신이 인간에 의해 창조된 사이버 공간의 사이버 캐릭터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다.

저자는 데카르트의 명제에 나온 ‘생각한다’는 말은 곧 ‘의식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데카르트는 교회는 물론 다른 어떤 권위로부터도 자유롭게 각자에게 주어진 이성적 능력만으로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7세기 당시로선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데카르트는 이처럼 혁신적인 문제의식을 토대로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 근대 철학에의 길을 제시했다. 영화 ‘13층’ 역시 이런 혁신적 사고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2001년 출간된 이 책은 주로 1990년대 영화들을 다뤘다. 최신 영화에 담긴 철학적 의미가 궁금하다면 저자가 지난해 6월 내놓은 후속편 ‘생각의 창, 키노 아이: 영화 속의 철학 Ⅱ’를 추천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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