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최초로 한국국적 취득…에티오피아 출신 아브라함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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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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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독재 시위 주도하다 망명 “민주국가서 다시 태어났어요”
정권 박해에 부모님 숨져 9년전 검거령 피해 한국行
대학서 신학 전공 뒤 취직 “아내-세살 딸과 너무 행복”

19일 석동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게서 귀화증서를 받고 있는 아브라함 씨. 사진 제공 법무부
19일 석동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에게서 귀화증서를 받고 있는 아브라함 씨. 사진 제공 법무부
“이제는 살았다.” 2001년 8월 21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브라함(가명·38) 씨는 충남 아산시 선문대 어학당으로 가는 유학생 전용버스를 타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국 에티오피아에서 한국까지 오는 데 걸린 기간은 꼬박 한 달. 그동안 단 하루도 편히 잠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해 5월 아디스아바바 국립대에 다니던 아브라함 씨는 시민과 학생 수천 명이 참가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동료들은 모두 구속됐지만 그는 친구 집을 오가며 도피생활을 계속했다. 에티오피아의 독재정치는 17년간이나 이어졌다. 장군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집과 땅을 몰수당했고, 거듭되는 박해를 견디다 못해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도 뒤이어 세상을 등졌다. 반정부 시위가 계속 이어졌지만 독재정권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1년 전국적으로 시위가 확대되자 정부는 대규모 검거령을 내렸고, 당시 대학생 수백 명이 걸어서 국경을 넘거나 해외로 도피했다.

평소 봉사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일본인 선교사가 숨어 있던 그에게 “어학연수 비자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한국으로 도망가라”고 조언했다. 그는 케냐에서 15일, 일본에서 15일간 초조하게 기다린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한국에 들어온 지 1년. 그는 “고국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았으니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법무부에 신청했다. 2005년 9월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까지 3년이 걸렸다. 일본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그동안 신학을 전공해 대학을 졸업했고, 한 대학교수의 소개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월급을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충남 천안시에 조그만 집도 장만했다. 뒤늦게 한국으로 온 여자친구와는 2005년 3월 교회에서 둘만의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세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3월 아브라함 씨는 한국인으로 살기 위해 귀화를 신청했다. 법무부는 그의 성실성과 생계유지 능력 등을 고려해 예상 심사기간보다 6개월 빠른 1년 만에 그의 귀화를 허가했다. 난민 출신으로선 최초로 한국인이 됐다. 19일 경기 과천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만난 그는 귀화증서를 품에 안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 새로 태어나게 돼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며 해맑게 웃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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