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0년 대학졸업정원제 도입

  • 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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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대학가에선 ‘대학졸업정원제’라는 무시무시한 굴레가 대학생들을 압박했다. 서울대의 경우 학기당 학점 평균이 2.0점(C0)을 밑도는 학생에게 학사경고장을 보냈다. 2회 연속 학사경고를 받거나 4년 재학 동안 학사경고를 총 3회 받으면 제적 처리됐다. 학점은 절대평가 방식이 아닌, 일정 비율에 따라 무조건 할당하는 상대평가 방식으로 매겨졌다. 이 때문에 학기말 고사가 끝나면 가슴을 졸이면서 교수 연구실을 기웃거리며 학점을 확인하려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전두환 정부가 넘쳐나는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81년부터 졸업 정원보다 30%가량 신입생을 더 뽑아 대학 문을 넓혀놨지만 졸업은 어렵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바로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마련한 대학졸업정원제도다.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국보위의 이런 방침에 따라 같은 해 9월 5일 ‘학과별 최소졸업정원제’ 내용을 담은 교육개혁 시안을 발표했다.

1981년 대학입시부터 적용된 새 제도는 대학 본고사 폐지와 졸업정원제 도입이 큰 뼈대를 이뤘다. 이뿐만 아니라 공직자 자녀에 대한 과외금지 조치를 취하고 이를 어기면 어김없이 공직자를 숙정하도록 했다. 과외 교사에겐 중과세하고 형사입건도 불사한다고 발표했다. 범국민적인 과외추방 캠페인도 벌였다. 졸업정원제 실시로 1981년 대학 입학 인원은 1980년보다 10만5000명을 더 충원하도록 했다.

그러나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자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다. ‘입학 문은 넓게, 졸업 문은 좁게’라는 선진국 대학의 학사 방침을 흉내내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일률적으로 30%를 중도에 탈락시키는 것은 교수들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대학생들도 지나친 경쟁 심리로 친구들에게 강의 노트를 빌려주는 것을 꺼렸다. 대학 친구는 캠퍼스 동료가 아니라 이기지 않으면 쫓겨나야 하는 무서운 경쟁상대자가 돼 버린 것이다. 교수는 학생의 생사권을 쥐고 흔드는 ‘탈락 재판관’으로 비치기도 했다. 졸업정원제로 탈락될 것을 걱정해 자살을 기도한 학생의 얘기가 신문 기사에 오르는가 하면 탈락의 명분을 찾기 위해 학생 시위에 가담하는 학생도 없지 않았다. 대학 캠퍼스는 지식의 전당이 아니라 시험 점수에 연연하는 학점 제조기를 양산하는 곳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일각에서 나왔다.

당초 취지와 달리 이처럼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자 문교부는 1985년부터 학생초과 모집비율 30%를 대학 자율에 맡겨 사실상 이름만 남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된다. 하지만 당초 국보위에서 노렸듯이 이 제도가 격렬한 학생 시위를 줄이는 데는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대학은 전임교원을 늘리기보다는 시간강사로 충원하는 사례가 많아 시간강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고착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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