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828년 獨카스파 하우저 사건 발생

  • 입력 2007년 5월 26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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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5월 26일 한 10대 소년이 독일 뉘른베르크 거리에 나타났다. 창백한 피부에 걸레와 다름없는 옷차림, 할 줄 아는 말이라곤 “몰라요” “군인이 되고 싶어요”뿐이었다. 소년이 갖고 있는 편지에는 이름과 생년월일, 부친이 기병대 군인이었고 소년 역시 군인으로 키워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소년이 바로 19세기 유럽 최대의 미스터리로 불렸던 ‘카스파 하우저’다. 느닷없이 나타난 소년이 놀라웠던 것은, 소년의 언행이 어린아이 내지는 거의 동물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소년은 모든 동물을 ‘말(馬)’이라고 불렀고, 사람들이 갖다 준 인형을 즐겁게 갖고 놀았다. 오감이 매우 발달해 포도주는 냄새만 맡아도 비틀거렸고 맥주를 보면 구역질을 했다.

말을 배운 뒤 카스파가 들려준 성장과정은 소설 같았다. 그는 천장이 낮아서 일어설 수도 없는 방에서 지냈으며, 자고 일어나면 빵과 물이 놓여 있었다. 어느 날 한 사내가 와서 그에게 ‘군인이 되고 싶어요’ ‘몰라요’라는 말을 가르쳐 주었고, 얼마 뒤 그를 뉘른베르크에 데려다 주고 사라졌다는 게 카스파의 증언이었다.

시 의회는 그를 지원하기로 하는 한편, 신원을 밝히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었다.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카스파는 빠르게 언어와 생활 습관을 배우게 된다. 이 신비한 소년의 사연은 유럽에 널리 퍼져서 많은 사람이 소년을 보러 왔다.

1829년 10월 카스파 하우저는 두들겨 맞아 쓰러진 채 발견된다. 카스파의 양육을 시에서 책임지는 데 대한 비난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만큼, 이 사건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카스파의 자작극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1833년 12월 공원에 나갔던 카스파는 흉기에 가슴을 찔린 채 돌아왔고 사흘 뒤 사망했다. 그는 괴한에게 찔렸다고 했지만 공원에는 카스파의 발자국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 사건 역시 자작극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 즈음 대부분의 사람이 카스파에게 무관심해졌는데 화려하게 주목받았던 카스파로선 견디기 어려웠으리라고 추정됐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드라마틱한 사연이 얽힌 만큼 카스파 하우저 사건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베르너 헤어초크는 이 이야기를 소재로 ‘카스파 하우저의 신비’라는 영화를 제작했고, 포크 가수 수잔 베가는 무관심에 대한 두려움을 주제로 카스파 하우저의 사연을 노래로 만들었다. 교육학에서는 교육의 가능성을 논할 때 카스파 하우저의 사례를 들곤 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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