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 아사히신문 논설주간 서울대 강연…학생들과 설전

  • 입력 2007년 5월 11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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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환 기자
홍진환 기자
“일본의 우경화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본은 예로부터 화해 움직임이 거세면 곧 반동으로 내셔널리즘이 대두됐다.”

일본의 대표적 지한(知韓) 논객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사진)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이 10일 오후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아시아의 화해’를 주제로 공개 강연을 했다.

와카미야 논설주간은 지난해 보수 신문 요미우리를 설득해 신사참배 반대 선언을 이끌어 내고 2005년 봄에는 ‘독도를 우정의 섬으로 하자’는 칼럼을 쓰며 한일 문제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 온 언론인.

그러나 강연 후 토론시간에는 지정 토론자 및 대학원생들과 과거사 사죄 문제 등을 놓고 날선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사죄 여러 번 했는데 믿지 않더라”=그는 일본의 과거 청산 문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전쟁 직후 일본인들은 미국에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이나 한국에 패배한 것이라는 의식이 없어 반성의 필요도 못 느낀 것 같다. 한국의 군사 독재 정권에 사죄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식도 있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독일과 일본을 똑같다고 하는 데는 저항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정 토론자로 나선 장인성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홀로코스트라는 절대성의 문제보다 아시아 (피해)국가의 경험 속에서 (일본의 만행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익년의 법칙 vs 병살타의 법칙=와카미야 논설주간은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을 과대하게 경계하면 실체를 잘못 보게 된다”며 ‘화해’와 ‘우경화’가 반복되는 ‘익년(翌年)의 법칙’을 제시했다. △1965년 시나 에쓰사부로(推名悅三郞) 외상의 사죄성명 뒤 1966년 건국기념일 제정이라는 우경화 움직임이 있었고 △1984년 천황이 과거사에 유감을 표시한 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이어졌다는 것.

이에 국제대학원의 한 남학생은 “안타(화해와 사죄)를 치고서 곧 병살타(우경화)를 쳐 버린 격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월드컵 공동개최 정신 잇자=와카미야 논설주간은 “한국 정부는 북한에는 너그러우면서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한 일본에는 엄격하다”며 “일본에도 햇볕정책을 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장인성 교수는 “한일 관계는 모호하므로 다자간 관계를 구축해 새로운 한일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와카미야 논설주간은 한일 FTA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월드컵 공동개최에 이어지는 공동의 후속 작업이 필요하며 그중 좋은 목표가 FTA”라고 답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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