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2년 중고교 두발-교복 자율화

  • 입력 200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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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이리 와 봐. 어, 이 녀석 봐라. 앞머리가 3cm도 넘네.”

“아니에요, 선생님. 2cm 맞는데…. 밤새 자랐나 봐요.”

중고교 시절, 바리캉(이발기)을 쥔 선생님은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두발(頭髮)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머리에 플라스틱 자를 댄 뒤 기준치를 넘어가면 바리캉으로 밀어 머리에 ‘고속도로’를 만들곤 했다.

뒷머리를 밀면 조금 나으련만 앞머리에 하얗게 민머리가 드러나는 ‘고속도로’가 생기면 그 비참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은 역사시간에 배운 ‘내 목은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 자른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며 단발령에 항거한 조선 말엽의 문신 최익현 얘기를 꺼내며 울분을 터뜨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왜 그렇게 머리에 집착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사춘기의 반항심리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 못하게 할수록 더 하고 싶은….

1982년 1월 2일을 기해 전두환 정부는 중고교생들에 대한 두발 및 교복 자율화 조치를 실시했다. ‘일제강점기 잔재를 없애자’는 각계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었다.

획일화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길러 준다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머리 모양은 그해 신학기부터 완전히 자율화됐고 교복 자율화는 이듬해부터 실시됐다.

하지만 자율화 이후에도 어느 정도 제약은 있었다. 이를테면 남학생은 옆머리가 귀를 덮거나 뒷머리가 깃에 닿는 ‘장발’은 금지됐고 여학생도 파마나 염색을 하면 안 됐다.

1980년 중고교를 다닌 학생들에게 ‘혁명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진 두발 및 교복 자율화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율과 규제를 적당히 섞은 형태로 변모해 왔다.

1990년 빈부(貧富) 격차로 생기는 위화감을 없애고 애교심을 기른다는 차원에서 “교복 착용을 적극 권장하라”는 정부 지시가 떨어진 이후 대부분의 학교는 교복 착용을 부활했다. 하지만 기존의 시커먼 교복이 아니라 산뜻한 색상과 현대적 디자인의 교복으로 탈바꿈한다.

머리는 자율화 이후 규제가 많이 완화됐다고 해도 학생들의 불만은 여전한 모양이다.

작년 일부 중고교에선 두발 자율화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함께 온라인 서명운동까지 펼쳐졌으니 말이다. 아, 머리카락이 뭐기에….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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