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별]피아니스트 임동혁의 이영애 찬가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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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테크닉과 열정적인 연주로 많은 소녀 팬을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사진 제공 크레디아
화려한 테크닉과 열정적인 연주로 많은 소녀 팬을 몰고 다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 사진 제공 크레디아
“저는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 씨를 좋아합니다.”

언젠가 내가 철없이 방송에서 무심코 한 말이다. 난 연예인을 잘 모른다.

하지만 영화배우라는 직업은 피아니스트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예술장르이면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다. 내가 이영애 씨를 좋아하는 것은 연기를 통해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출연한 작품마다 좋은 이미지를 남겨서일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이영애 씨는 단 한번도 유치하거나 조악한 작품을 선택한 적이 없다. 비록 그 이미지가 실제 배우의 이미지가 아니라 작품 속 주인공의 이미지일지라도 말이다.

나는 열 살 때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다. 10년을 살았던 러시아나 지금 거주하고 있는 독일에는 모두 한국 교민이 많다. 코리아타운의 특징은 한국 슈퍼마켓 안에 꼭 한국 비디오 대여점이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외국 생활을 한 나는 한국 드라마에 대한 향수가 없어서 별로 빌려 본 기억이 없지만 그나마 본 몇 안 되는 드라마 중에 두 개가 이영애 씨가 주연한 작품이었다.

영화 ‘선물’은 연예인 이영애 씨를 영화배우 이영애 씨로 알게 해 줬다.

직업이 피아니스트인지라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영화음악인데 영화를 보고 난 직후 OST 음반을 살 정도로 내 마음을 녹였다. 정말 마음에 들어서 실제로 공연할 때 앙코르로 연주하기도 했고 반응도 상당히 괜찮았다. 영화를 좋아하면서 출연하는 주인공을 안 좋아할 수 있을까? 나는 이영애 씨가 출연한 모든 작품은 이영애 씨가 아니었으면 소화해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설사 틀린 말이라도 관람 후엔 그런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드라마 ‘대장금’은 한국에서 DVD 세트로 나온 것을 구입해서 봤다.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CD로 굽지 않고 정식 DVD를 샀다는 것을, 꼭 강조하고 싶다. 이 DVD는 한국에 공연이 있어 갔다가 사 온 것인데 친구들이 더 좋아해서 하노버에 있는 유학생이 모두 돌려 봤던 기억이 있다. ‘대장금’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드라마였다. 무엇보다 ‘선물’과 이미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나를 안심시켰다. 나에게 이영애 씨 하면 떠오르는 것이 ‘청순’이라는 단어다. ‘대장금’에서는 그 이미지가 이전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나 있어서 좋았다. 그것이 설사 이영애 씨의 개인 이미지가 아니라 장금이의 이미지라 해도 말이다.

나는 음악가든 미술가든 연기자든 자신의 성격이 일에 약간은 반영된다고 믿는다.

또 주인공 캐릭터를 배우의 진짜 성격이라고 믿게 만든다면 그것이 훌륭한 연기가 아닌가 싶다. 이영애 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작곡가가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쇼팽을 좋아하지만 이영애 씨는 모차르트를 연상시킨다, 그중에서도 피아노 콘체르토 21번 KV467 2악장을. 매우 유명한 곡이라 분명히 아실 거라 생각한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주제곡으로 쓰였는데 누구나 들으면 ‘아, 이 음악!’ 하고 무릎을 칠 만한 곡이다. 지금은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지만 한때는 태교에도 좋다고 선전할 만큼 청아하고 순수하게 들린다. 그만큼 연주하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이 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가 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가 모차르트를 만나러 빈에 왔다가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모차르트의 근황을 전하는 편지를 띄웠다. 내용은 최근 그가 작곡한 피아노 콘체르토가 큰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중 2악장은 정말 아름다워서 공연장에 있던 모든 관객이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이영애 씨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봤다. 대답은 하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저 쇼팽 음악을 아름답기 때문에 좋아하듯이 말이다.

한 인터뷰에서 이영애 씨가 클래식 음악에도 관심이 있고 음악회에도 자주 간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 연주회를 하면 이영애 씨를 초대하고 싶다.

■ “내 음악회 초대하고 싶어요”

제인 캠피언 감독의 영화 ‘피아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한국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까지…. 영화 중에는 피아니스트를 주인공으로 삼거나 피아노와 연관된 작품이 많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처음 만난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와 영화배우 윤정희 씨의 사랑은 당대 화제였다. 피아니스트와 영화배우 간에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일까.

“피아니스트나 연기자나 비슷한 면이 있다고 했는데, 어떤 면이 그런가요?”

독일 하노버에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동혁(22) 씨가 보내온 영화배우 이영애(34) 씨에 대해 쓴 글을 읽고 기자는 전화로 물었다.

“연기자는 대본을 보고 연기하지만, 피아니스트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잖아요.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배우에 따라 다르듯이, 같은 곡을 쳐도 연주자마다 달라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원작을 생생하게 살아나게 하는 것은 연기자와 연주자의 몫입니다. 연기도 예술이고, 연주도 예술인 셈이지요.”

임 씨는 “이영애 씨를 언제부터 좋아했느냐”는 질문에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마냥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다른 이미지로 나왔다기에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임 씨는 1994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으로 유학해 2001년 롱 티보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했다. 10대 시절 세계적인 음반레이블인 EMI를 통해 데뷔했으며,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형 동민 씨와 공동 3위에 오른 스타 피아니스트기도 하다. 그는 “내년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으로 유학하기 위해 현재 토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배우 이영애 씨는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다. 그의 프로필에는 특기란에 ‘피아노 연주’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피아노를 배운 이 씨는 요즘도 집에서 종종 어머니를 위해 피아노를 친다. 2004년 10월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벵게로프의 내한공연에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 씨와 함께 음악회를 찾기도 한 이 씨는 오페라나 콘서트장을 자주 찾는다.

임 씨는 10월 BBC심포니와 내한공연을 할 때 기획사를 통해 이영애 씨를 초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씨는 바쁜 일정 때문에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임 씨는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이며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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