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29년 뽀빠이 탄생

  • 입력 2006년 1월 17일 03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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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 줘요, 뽀빠이!”

올리브가 높고 새된 목소리로 외치면 언제 어디서든 시금치 통조림을 먹고 달려오는 뱃사람 ‘뽀빠이’. 그가 17일로 ‘77세’를 맞았다.

미키 마우스와 함께 가장 장수한 캐릭터 중 하나인 뽀빠이는 1929년 1월 17일 미국의 한 신문 연재만화 ‘골무극장’에 별 볼 일 없는 조연으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그러나 우람한 팔 근육을 자랑하던 뽀빠이는 단숨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2년 만에 주인공으로 승격했다. 올리브도 다른 남자 친구를 버리고 뽀빠이의 연인이 됐다. 1933년에는 TV 만화영화 ‘뱃사람 뽀빠이’가 만들어졌고 1980년에는 로빈 윌리엄스가 뽀빠이를 연기한 뮤지컬 영화도 나왔다.

키가 작고 주걱턱에 애꾸라서 볼품없던 뽀빠이가 어떻게 올리브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뽀빠이는 이후 만화계를 평정하게 될 ‘초(超)영웅’들의 선조 격이었다. 도덕 기준이 투철했으며 사악한 ‘브루터스’에게 공격을 받거나 나쁜 행동을 더는 참을 수 없을 때에만 힘에 의존하는 ‘정의의 사도’였다. 뽀빠이를 탄생시킨 만화가 엘지 시거가 “욕설을 내뱉고 사람들을 패주고 싶은 불만을 뽀빠이에게 맡겨 버린다”고 고백했듯, 뽀빠이는 사람들의 마음속 억눌린 분노를 대신 표현해 주는 존재였다.

툭 하면 “나는 나야. 그게 나의 전부야”라고 말하곤 했던 뽀빠이는 미국식 개인주의를 상징했고 미국의 자부심을 대변했다. 만화영화 시리즈에선 뽀빠이가 브루터스를 물리칠 때 배경음악으로 미국 국가인 ‘성조기여 영원하라’가 쓰이기도 했다.

뽀빠이가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설정이 들어간 까닭은 1920년대 말 한 논문에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이 실제보다 10배나 많게 잘못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시금치에는 칼로리를 낼 만한 영양소가 거의 없어 ‘힘’과는 상관없지만 뽀빠이 덕분에 1930년대 미국에서는 시금치 소비가 33%나 증가했다. 텍사스 크리스털 시티의 시금치 재배 농부들은 이에 감격해 마을에 뽀빠이 동상까지 세웠다.

뽀빠이는 장수 캐릭터인 만큼 ‘실버 금실’을 과시했다. 뽀빠이가 오래된 연인 올리브와 결혼한 것은 1999년의 만화영화 특별판에서였다. 변치 않은 사랑이 7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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