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중화상 극복 '인간승리' 이지선씨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9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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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이지선씨의 집에는 여러 송이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활짝 웃는 해바라기는 지선씨의 ‘상징’. “지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고, 오늘이 행복해요.” 원내는 사고 직전 대학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하던 당시의 이지선씨. -박영대기자
29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 이지선씨의 집에는 여러 송이의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활짝 웃는 해바라기는 지선씨의 ‘상징’. “지난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있고, 오늘이 행복해요.” 원내는 사고 직전 대학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하던 당시의 이지선씨. -박영대기자
전신 중화상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여성 이지선(李知宣·26)씨. 그에게 올해는 참으로 ‘특별한’ 한 해였다. 대중 속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온 해인 것이다.

2월에는 한국대학생대중문화감시단이 주관하는 ‘촛불상’을 받았다. 이웃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에게 주는 이 상의 첫 수상자가 된 것. 4월 KBS 2TV ‘인간극장’에 출연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어 5월에는 홈페이지 ‘주바라기’(www.ezsun.net)에 올렸던 글을 묶어 ‘지선아 사랑해’(이레)를 펴냈고, 가을 내내 대학 채플과 교회를 돌며 간증을 했다. 12월에는 한림대 의대 한강성심병원 화상환자후원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학교 다니면서도 1등이란 걸 해본 적이 없는데 화상으로 ‘막강 1등’이 됐다”는 지선씨는 “이제 길을 다니면 얼굴이 특이하니까 사람들이 금방 알아보고 반가워한다”며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이화여대 유아교육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7월 오빠와 함께 경승용차로 귀가하다가 음주운전자가 일으킨 6중 충돌 사고를 당했다. 온몸에 3도 화상을 입고 피부의 55%를 잃었다. 생사의 고비를 넘긴 뒤 7개월간의 입원과 11차례의 수술. 턱이 덜덜 떨릴 정도의 고통과 직면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때는 빨리 중환자실을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같은 병실에 있는 또래의 여자환자가 살기 싫다고 일부러 굶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살겠다고 다짐했죠. 내 앞에서 결코 울지 않는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말했다. “그래,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어?” 이 말이 그의 마음을 다잡아줬다. ‘여기가 바닥이니까….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기겠구나.’

당시에는 퇴원만하면 예전의 생활과 고운 얼굴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이지선의 얼굴’인걸요. 이 얼굴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새롭게 주어진 ‘덤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첫번째 숙제였지요. 거울 속에 있는 낯선 제게 인사를 했어요. ‘지선아, 사랑해’라고….”

얼굴도 손도 목도 없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마스크맨이다”하고 장난을 칠까하다 그만둔다. 손가락 절단 수술을 앞두고는 “하나님이 손가락 조금 짧아지더라도 손 다 쓸 수 있게만 해주시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 들면 ‘그저 살아있음이 감사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는 내년 3월 미국으로 떠날 계획이다. 보스턴대나 위스콘신대 재활상담 석사 과정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 ‘상처의 치유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저 같은 중도 장애인(살다가 장애를 입게 된 사람)들은 흔히 현실 부정에서 절망, 삶의 포기까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들이 재활해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도록 돕고 싶어요. 내가 이런 고통을 겪은 건 어찌 보면 잘된 일이에요.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가 없거든요.”

사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그 고통을 사랑으로 만지는 사람에게는 치유가 일어나며 새로운 힘이 생긴다.

“절망에 빠져 현실을 보면 죽는 길밖에는 방법이 없어요. 절망은 사람을 죽게 만들죠. 그런 상황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야 해요. 희망은 없어 보이는 가운데도 반드시 있어요. 새롭게 살아지더라고요. 절 보세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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