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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피카소 '게르니카'…화면 가득한 공포와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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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피카소 '게르니카'…화면 가득한 공포와 연민

입력 2000-08-08 18:47수정 2009-09-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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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게르니카

20세기 현대 회화의 최대걸작으로 꼽히는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실물크기(7.8×3.5m)의 디지털 페인팅 작품으로 재현돼 27일까지 서울 여의도동 63빌딩 특별전시관에서 전시된다. 전쟁의 공포와 독재자의 횡포를 테마로 한 이 작품은 해석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술평론가인 강태희교수의 해설과 전시를 주관한 겟아트의 부분별 설명을 통해 ‘게르니카’를 심층 분석한다. <편집자>

‘게르니카’는 20세기에 제작된 미술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피카소의 대표작이자 위대한 역사화이자 반전회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상을 분할하고 왜곡시키는 큐비즘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미지들을 투명하게 읽어내기 어렵게 만들어서 전문가들 사이에도 그 구체적 해석에 이견이 많은 작품이다.

‘게르니카’의 특징은 말의 몸을 장식한 패턴들과 흑,백, 회색으로 구성된 억제된 톤들이 신문의 활자와 보도사진을 연상시킴으로써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강화하고 있고, 개별 상황의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고간 생생한 화면구성과, 또한 비록 구체적인 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전반적인 공포와 연민에 초점을 두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점등을 들 수 있다.

그림은 과열된 전구와 말의 머리를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과 그 좌우에 황소와 두팔을 벌린 여인 등 크게 세부분으로 돼 있다.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중앙 부분에는 창에 복부를 관통당한채 고통의 극한을 경험하고 있는 말과, 절단된 병사의 얼굴과 팔, 그리고 서둘러 도피하는 과장된 사지의 여인이 있다.

이 부분은 게르니카의 무고한 주민과 병사들이라는 실제 인물들과 말로 대변되는 스페인 공화국의 상징이 결합되고 있는데 잘린 병사의 손 옆에 있는 꽃은 그의 투혼을 기념한다. 중앙의 참상은 오른쪽의 불타는 집에서 떨어지는 여인의 모습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램프를 비추며 창을 통해 등장하는 또 다른 여인에 의해서 증언되고 또 심판 받을 것이 암시된다.

화면 왼쪽에는 죽은 아기를 안고 울부짖는 또 하나의 여인과 황소, 그리고 탁자 위에서 경련을 일으키는 비둘기가 있다. 여기서 황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논란이 되어왔는데 말이 스페인 공화국을 나타낸다면 무표정한 황소는 압제자인 프랑코를 나타내는 것이 당연할 듯하다.

그러나 황소는 스페인의 상징이자 피카소의 자아를 대변하는 이미지라는 점에서 또한 그림의 모든 인물은 물론 말까지도 황소를 바라보고 있어서 이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스페인의 희망이자 갱생에 대한 의지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이 있다.

이 그림을 평이한 전쟁 다큐멘터리나 상식적인 기념화가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구한 것은 물론 피카소의 능력이지만 애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포함한 것 역시 그림을 다양한 해석을 향해 열어놓는 작가의 의도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개별적인 이미지를 규명하고 그를 조합하는 것이 곧 작품의 올바른 해석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그 진정한 의미는 각자가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보이지 않는 어떤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강태희(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교수)

◆피카소 자신은…

“이 소는 그냥 소다. 이 말도 그냥 말이다. 또 게르니카 안에 새 한 마리도있는데 그게 무슨 새인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어떤 상징들이지만 화가가 이런 상징들을 믿는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뭔가를 말하고 싶다면 그림을 그리는 것 보다 글을 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소나 말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바대로 상징들을 보아야 한다. 동물들이 뒤틀려 있다. 내게는 그것이 전부다. 사람들은 그냥 자신이 느끼는 대로 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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