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부실개발’…가습기살균제 아닌 ‘가습기살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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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23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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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23/뉴스1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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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재수사로 대규모 피해자를 낸 ‘유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기업들이 제품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23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68) 등 8명을 구속기소하고, 환경부 서기관 최모씨(44) 등 26명을 불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수사 의의는 흡입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탈이소티아졸리논(MIT)을 이용해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개발하던 1994년 당시부터 안전성 검증이 부실했다는 점을 밝혀낸데 있다.

CMIT와 MIT는 최초의 가습기살균제인 유공의 ‘가습기메이트’에 포함된 성분이다. 2000년 SK케미칼은 유공의 가습기메이트 사업을 인수해 2002년부터 애경산업과 공동으로 이 제품을 제조·판매한다.

‘가습기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냈지만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검찰 첫 수사 당시엔 정부의 독성실험 결과에서 CMIT·MIT 원료물질과 피해 간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아서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당시 기소를 면한 SK케미칼과 함께 애경산업, 이마트 전현직 임원들을 지난해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환경부 등으로부터 해당 원료 유해성이 입증된다는 연구자료를 제출받은 검찰은 올해 1월 재수사를 본격화했다.

검찰은 그 결과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 부실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1994년 9월 유공 가습기메이트 개발담당 연구원 연구노트엔 CMIT·MIT 농도 설정시 인체 안전계수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돼있다.

이처럼 문제제기를 받은 유공은 이영순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에 의뢰해 그해 10~12월 사이 거듭 유해성 실험을 진행한다.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결과, 해당 성분으로 실험 대상 쥐들에겐 병변이 발생하고 백혈구 수치가 줄었다. 교수팀은 안전성 검증을 위해선 추가 흡입독성 시험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유공은 이 시험의 최종 결과가 회신되기 전인 1994년 11월 가습기메이트 판매를 시작했다. 최종 보고서는 약 8개월 뒤인 1995년 7월에야 나왔다.

2000년 유공의 가습기메이트 사업을 인수한 SK케미칼은 해당 최종 보고서를 전달받고도 안전성을 추가로 검증하지 않고, 2002년부터 애경산업과 공동으로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가습기메이트가 건강에 해롭지 않냐는 고객 클레임에도 조치는 없었다.

검찰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 과실과 피해 간 인과관계가 그동안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이번 수사로 해당 기업들 과실이 규명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와 관련 CMIT·MIT를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의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과실로 인명피해를 낸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로 홍 전 대표 등 3명을 구속기소하고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60) 등 15명을 불구속기소했다.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가습기살균제 원료로 공급한 과정에서의 관련기업 과실도 이번 재수사로 확인됐다.

SK케미칼은 2016년 옥시 등이 PHMG를 쓴 가습기살균제를 팔아 대규모 사상자를 낸 뒤 처벌받을 때 면책됐다. 중간도매상에 판매만 했지 원료 사용처는 모른다는 논리가 받아들여져서다.

그러나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SK케미칼 직원들이 2000년 옥시 관계자에 PHMG를 원료로 쓰라고 소개하고, 2009년 홈플러스의 PHMG 가습기살균제 관련 실험을 진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PHMG를 가습기살균제의 원료로 공급한 최모 전 SK케미칼 팀장(54)은 구속기소됐고, 팀장과 팀원 등 3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특히 PHMG는 SK케미칼 직원들이 독성정보를 일부 은폐하거나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피해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판단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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