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뻘 되는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홍위병의 진실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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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 대낮

그들은 간통한 여자를 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갔다.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학교가 문을 닫고 있던 시절이어서 운동장은 공개재판에 알맞은 곳이었다. 여자를 끌고 간 사람들은 스무 명 남짓한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여자는 벌레이자 독사이며 악마였다. 그들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랐다. 그리고 난잡한 여자를 상징하는 낡은 신발을 여자의 목에 걸고, ‘나는 찢어진 신발이다. 죽어도 싸다’라는 문구가 적힌 천을 여자의 가슴에 붙였다. 그들은 얼굴에서 피가 흐르는 여자를 더 치욕스럽게 하려고 거리로 끌고 다녔다. 아이들을 포함한 수백 명의 구경꾼들이 뒤를 따르며 죽이라고 소리쳤다. 여자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징을 치면서 소리쳤다. ‘나는 사악한 괴물이다.’ 백주 대낮에 생긴 일이었다.

중국계 미국작가 하진의 소설 ‘백주 대낮’이 전하는 내용이다. 소설은 어머니 아니 할머니뻘 되는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홍위병들의 모습을 아이의 눈으로 보여준다. 허구적인 스토리라서 실제로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작가가 문화혁명을 직접 체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많은 소설들을 썼다는 걸 감안하면 유사한 사건이 있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그 시기에 학교가 문을 닫은 것도, 홍위병들이 부르주아 잔재를 도려내겠다며 날뛴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의 말이 법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여자의 고백에 따르면, 그녀가 상대한 남성 중 하나는 다른 무리의 홍위병 대장이었다. 아이러니도 그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감추고 싶은 과거의 상처들을 떠올리게 하는 불편한 스토리일 수 있다. 이념이 조장한 집단 히스테리, 순진한 아이들까지 증오에 편승하게 만든 그 히스테리가 남긴 상처들. 그러나 햇볕을 쬐어야 아무는 상처처럼, 역사 속의 아픈 상처와 기억은 햇볕 속으로 드러내야 아물기 시작한다. ‘백주 대낮’과 같은 소설이 세상 곳곳에 필요한 이유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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