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정치·경제 사령탑 ‘여성 듀오’, 새 역사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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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7일 15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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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후보자(왼쪽)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후보자. © News1 너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후보자(왼쪽)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후보자. © News1 너
‘여성 듀오’가 유럽의 정치·경제 사령탑을 맡으면서 대륙의 새 역사를 쓰게 됐다.

16일(현지시간)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후보자는 유럽의회 인준 투표를 통과했고, 크리스틴 라가르드 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같은 날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지명 절차를 밟기 위해 사임 일정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EU의 행정수반 격인 집행위원장과 ECB의 총재 자리에 여성이 등극하는 건 각각 역대 최초의 사례다. 양성 간 사회적·경제적 평등이 비교적 잘 지켜지는 유럽에서도 두 보직에 여성이 한꺼번에 진출한 적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1958년생인 폰데어라이엔 후보자는 최근까지 독일 국방장관직을 수행했으며, 보수 성향의 유럽통합파 정치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독일 괴팅겐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하노버대에서 의학을 공부해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2003년 니더작센주 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디뎠고, 2005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기독교민주연합(CDU) 대표였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발탁돼 중앙정부 내각에 진출했다.

이후 내각에서는 가족청소년부와 노동사회부 장관을 역임했고, 가정에서는 7남매를 슬하에 둔 ‘다둥이’ 어머니다.

폰데어라이엔 후보자는 인준 통과가 확정된 뒤 “더 단결력 있고 강력한 EU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차기 집행위원장으로서 무역 협상과 각종 경제·환경·기후 관련 정책을 수행해 나가게 된다.

이날 그는 오는 2050년까지 유럽을 최초의 기후중립 대륙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임기 100일 이내에 유럽을 위한 ‘그린 딜’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럽투자은행(EIB)의 일부를 기후은행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난민 문제와 관련해서는 EU 회원국이 모두 준수할 수 있는 대처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오는 9월12일부로 IMF 총재직에서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후임 인선 과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그가 별탈 없이 ECB 총재에 등극한다면 세계 경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유럽연합 19개국) 통화정책 주도권자가 된다.

뉴욕타임스(NYT)는 투자자들이 라가르드 총재가 전임자인 마리오 드라기 총재처럼 유로화를 보호하는 데 집중하고 완화적인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라가르드 총재가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는 변호사 출신인데다, 프랑스 재무장관으로 일하긴 했지만 중앙은행에서 통화정책 관련 업무를 맡아 본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ECB 총재로서의 자격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도 변호사 출신에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고, 장 클로드 트리셰 전 ECB 총재도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박사 학위는 없었다. NYT는 이 두 인물은 그래도 중앙은행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라가르드 총재보다는 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분석가들은 라가르드 총재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ECB 통화정책회의 이후 기자회견처럼 ‘대본이 준비되지 않은 자리’에서 찾아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ECB 통화정책회의 기자회견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고, 이 때 ECB 총재 발언의 뉘앙스에 따라 금융시장은 즉각 반응한다. 중앙은행 총재는 발언할 때 일말의 오해도 사지 않기 위해 엄청난 기교를 발휘해야 한다.

따라서 전문성이 다소 부족할 수 있는 라가르드 총재는 고문들의 조언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고 NYT는 전망했다. 일각에선 그가 IMF 총재직을 8년간 수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고 주장하지만, IMF는 회원국의 경제적 성과를 감시하는 역할을 할 뿐 세계 경제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라가르드 총재는 기후변화와 소득 격차, 성(性) 불평등에 중점을 둔 정책을 펴면서 ‘IMF는 예산 삭감을 강요하는 기관’이란 이미지를 바꾸고 기관의 청렴도를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NYT는 라가르드 총재가 드라기 총재에 비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성격이라 직위가 낮은 직원들과도 쉽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였다고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위기 상황에서 회원국 간 중재를 위해 그간 쌓아온 정치적 연륜을 십분 발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IMF 미국측 대표를 지낸 더글러스 레디커 브루킹스 연구소 비상임 연구위원은 NYT 인터뷰에서 “유럽의 모든 건 암묵적이든 명백하게든 정치적 요소가 있다”면서 “라가르드 총재가 가진 (정치적) 기술은 현 시점에서 ECB에 이상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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