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의 시대⑩] 게임질병 코드에 대한 게임사들의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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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7월 16일 1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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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 72차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포함된 ICD-11(국제질병분류 11차 개정판)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게임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지난 2016년에 이미 게임중독의 질병코드화 계획을 포함한 '정신건강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WHO가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를 최종 확정하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힌 만큼 게임업계는 사면초가에 몰려 있는 상황이다. 다가온 게임 질병의 시대, 국내 게임산업계는 어떻게 대응해야하고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본지에서 짚어봤다>


지난 5월25일 WHO 게임 질병 코드 발급이 발표되자 게임업계에서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전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미래 산업의 선두주자에서 한순간에 마약이나 다름없는 중독 물질을 만드는 사람들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게임업계는 이번 결정으로 인해 청소년을 넘어 전국민의 대표적인 문화 생활로 자리잡은 게임을즐기는 이들이 죄의식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됐으며, 이로 인해 개발자들도 자유로운 창작적 표현에 있어 엄청난 제약을 받게 되고, 더 나아가 우수한 인재들이 게임산업을 기피하게 되면서 게임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 게임 개발자 협회 등 여러 단체들이 앞다투어 게임 질병 코드 도입 반대 성명을 내고 있으며,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영화학회,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 한국게임개발자협회 등 84개 관련 단체들이 모여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도 출범했다.

게임 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동 대책 위원회 발족행사 (사진=게임동아)
게임 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동 대책 위원회 발족행사 (사진=게임동아)

게임산업을 주관하고 있는 문체부 역시 WHO가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게임중독을 질병이라고 결정내렸다고 보고, 이에 반대하는 공식 의견서를 WHO에 전달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대상이 될 게임업체들은 굉장히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엔씨소프트, 넥슨, 펄어비스, 네오위즈 등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대형 게임사들이 페이스북 등 공식 계정을 통해 “게임은 문화입니다. 질병이 아닙니다”라며,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에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긴 했지만, 게임 질병 코드 발급 철회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엔씨소프트 게임장애 질병 코드 반대 (출처=엔씨소프트 SNS)
엔씨소프트 게임장애 질병 코드 반대 (출처=엔씨소프트 SNS)

게임업계 출신인 김병관 의원이 관련 행사에 참석해 “이제는 게임업계 큰 형님들이 나설 때가 됐다” 라고 게임사들의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게임사들이 게임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와 문체부의 활동에 협조할 계획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고 있다.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 입장에서 국가 정책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사태에 대한 게임사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게임산업에 심각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남들이 나서주기만을 기다릴 뿐 모두 힘을 합쳐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의진법, 손인춘법 때도 그러더니, 6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다.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긴급 토론회(사진=게임동아)
WHO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긴급 토론회(사진=게임동아)

그동안 보건복지부 등 게임 질병 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이들은 전세계 게임 중독 관련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인 91편의 논문이 한국에서 나올 정도로 적극적인 활동을 진행했다. 한국게임개발자협회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게임 중독 논문들의 연구비로 투입된 정부 예산이 무려 250억원에 달한다. 또한, 국민 공감대를 얻기 위해 2013년 신의진법 때만 하더라도 억지에 가까웠던 주장들을 상당 부분 보완한 상태다.

문화연대 게임질병코드 분류 긴급 토론회 윤태진 교수 발표 자료 (자료=윤태진 교수)
문화연대 게임질병코드 분류 긴급 토론회 윤태진 교수 발표 자료 (자료=윤태진 교수)
반면에 게임업계에서는 게임 질병 코드 반대에 관한 구체적인 근거를 마련하지 못하고, 계속 감성적인 측면만 호소하고 있다.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NHN이 게임문화재단에 3년간 4억5천만원을 투자해 진행하고 있는 연구 외에는 게임 질병 코드 반대를 위한 연구 투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사단법인 한국게임학회가 손을 잡고, ‘게임은 문화다’라는 슬로건으로 게임문화 학술논문공모전을 진행하고 있긴 하지만, 준비 기간이 두달에 불과하며, 상금도 모두 합쳐 300만원에 불과하다.

게임문화 학술논문공모전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문화 학술논문공모전 (제공=한국콘텐츠진흥원)
물론, 게임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게임을 직접 만들고 있는 당사자인 만큼 너무 적극적인 움직임은 게임 질병 코드 도입 찬성 세력을 더 자극할 수 있으며, 향후 게임 질병 코드가 실제로 도입된다면 보건복지부 등 주요 기관에 타겟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넷마블은 게임업계 초과근무 사태로 정의당에게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많은 보완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로의 등대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업계는 다르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인 법이 정비되지 않아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는 모빌리티 산업 쪽에서는 카카오 모빌리티, 타다 등 관련 회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가 있는 법을 바꾸고, 정부와 관련 단체들의 협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 일이 터지고 나면 움직이는 게임업계 리더들과는 사뭇 다른 움직임이다.

이번 WHO의 발표로 인해 게임 질병 코드 적용이 확정됐다고는 하나, 국가별 권고 사항인 만큼 실제로 국내에 도입될 때까지는 아직 6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 있다. 남은 기간 동안 게임업계가 이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결과가 주목된다.

동아닷컴 게임전문 김남규 기자 kn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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