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성폭력 피해 10대의 절박한 외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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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아동 느는데 심리치료 저조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문예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그린 그림과 창작 시. 한
 피해 청소년은 ‘말 못할 비밀’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오른쪽). 합동 작품인 ‘꿈꾸는 나무’에 
쓰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우리 행복하자, 너를 위해”라는 문구에서는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왼쪽 
위). 왼쪽 아래는 피해 아동이 그린 자화상이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제공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문예창작 동아리’ 활동을 하며 그린 그림과 창작 시. 한 피해 청소년은 ‘말 못할 비밀’이란 제목의 시를 통해 정신적 고통을 표현하기도 했다(오른쪽). 합동 작품인 ‘꿈꾸는 나무’에 쓰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우리 행복하자, 너를 위해”라는 문구에서는 함께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볼 수 있다(왼쪽 위). 왼쪽 아래는 피해 아동이 그린 자화상이다.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제공
미현(가명·13) 양은 지난해부터 친오빠에게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견디다 못한 미현 양은 학교 상담교사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상담 교사는 경찰과 미현 양의 부모에게 알렸다. 이후 미현 양은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를 찾았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의료, 상담, 법률 지원 등을 하는 여성가족부 산하기관이다.

미현 양은 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하지만 두 번 정도 센터를 찾은 뒤 발길을 끊었다. 어머니가 치료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들의 성폭행 가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현 양이 피해 사실에 대해 진술하는 것도 막으면서 피해를 축소하려 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아동·청소년이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의 해바라기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은 2016년 7505명, 2017년 8020명, 2018년 8105명이다. 하지만 전문기관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와 심리치료를 받는 피해 아동은 많지 않다. 성폭력 피해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부모들이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미현 양의 사례처럼 친족 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심리치료를 받는 경우는 더욱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치료를 받더라도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에 상담을 문의한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은 508명이지만 이들 중 112명만이 실제로 센터에 찾아와 의사의 진료와 상담을 받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병·의원에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진료를 받은 아동·청소년은 1581명이다. 같은 해 전국 해바라기센터에 집계된 8105명의 성폭력 피해 아동·청소년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이 난다. 진료를 받은 1581명이 모두 성폭력 피해자는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치료를 받고 있는 성폭력 피해 아이들의 수는 더 적을 것으로 보인다.


성폭력을 당한 직후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피해 아동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서연(가명·14) 양은 2년 전 큰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서연 양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곧바로 지방의 한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지만 신고와 치료는 포기했다. 서연 양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최근 다시 해바라기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치료 시기를 놓쳐 PTSD 등의 증세가 악화돼 완치가 어려워졌다.

홍민하 경기북서부해바라기센터 소장은 “부모들이 치료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친족에 의한 피해일 경우 가족 내 문제로 ‘집안 망신’시키지 말자며 아이가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서울해바라기아동센터 부소장도 “성폭력 피해 아동들은 대부분 PTSD 진단을 받는다”라며 “치료 시기를 놓치면 주변의 상황에 극도로 예민해지는 각성 상태가 심해지고 환청이나 이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일 광주 남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모녀 성폭행 미수 사건의 피해 아동 A 양(8)도 아직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 양의 어머니는 “딸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아직도 부들부들 떨면서 운다. 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데 전화를 하면 ‘이사 가자’는 말만 한다”며 “딸이 범인이 침입했던 단칸방에서는 악몽이 되살아나 살 수 없다고 해 조만간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아동청소년#성폭력 피해#해바라기센터#심리치료 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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