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두닝우 “독립운동가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4일 13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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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후 중국 광저우 한 호텔, 한중 우호 카라반 환영 리셉션, 특별 연주 후 기자단과 별도 간담회를 갖고 있는 운암 김성숙 선생 장손 피아니스트 두닝우.
11일 오후 중국 광저우 한 호텔, 한중 우호 카라반 환영 리셉션, 특별 연주 후 기자단과 별도 간담회를 갖고 있는 운암 김성숙 선생 장손 피아니스트 두닝우.
“독립운동가인 할아버지에게서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추구해야 하는 지 등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기적이지 않는 삶을 배웠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운암 김성숙 선생(1898~1969)의 손자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두닝우 씨(53)는 11일 오후 조부가 남긴 유산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두 씨는 “그때는 독립운동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여서 추구했지만 현대에는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을 추구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외교부는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9일부터 13일까지 청년 100명과 함께 중국 내 임시정부 활동 근거지를 역순으로 돌아보는 ‘한중 우호 카라반’을 기획했다. 두 씨는 그 가운데 11일 주광저우총영사 주최 환영 리셉션에 참석해 국민대표단 100명에게 ‘아리랑’을 다양한 변주로 선보였다. “하룻밤에 작곡해서 완성한 지 며칠 안 됐다”고 밝힌 두 씨는 올해 3월 KBS 해외동포상을 받기 위해 귀국한 이후 한국 곡과의 인연을 넓혀가고 있다.

두 씨는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만난 자리에서 기회가 된다면 “제목은 모르지만 이 노래를 편곡하고 싶다”면서 진도아리랑을 허밍으로 들려줬다. 그는 “앞으로는 한국 곡이 나오면 편곡을 많이 했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성숙 선생은 1919년 ‘조선독립군임시사무소’ 명의의 격문을 뿌려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 중국에 건너가 창일당, 의열단, 광저우혁명, 조선민족해방동맹, 조선민족 전선연맹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약산 김원봉 선생과 조선의용대를 조직해 지도위원겸 정치부장을 지냈으며 좌우가 통합된 중경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선전위원, 국무위원등을 역임했다.

두 씨는 어렸을 때 아버지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며 “임시정부 국무위원 하실 때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항상 못 먹었다고 한다. 자신이 먹은 음식을 아이들에게 주고 본인은 굶으시고, 많은 글들을 쓰셨는데 배가 고프니까 배 앞에 베개를 붙여놓고 글을 쓰셨다고 한다”는 일화를 전했다. 일본이 항복한 뒤 광복이 찾아오자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셨지만 중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 데 대해 “할머니가 서운해 하셨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두 씨는 “정치에 관심도 많고 소식 듣는 것을 좋아한다”면서 “한중 관계가 나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안 좋았다. 한국과 중국의 우호관계가 점점 나아지길 바란다”는 소망도 비쳤다.

광저우=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외교부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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